(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로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궤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고용 부진으로 국내 경제여건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지정학적 리스크마저 고조될 경우 연내 금리 인상은 물 건너가는 셈이다.

한은은 25일 오전 8시 반에 윤면식 부총재 주재로 통화금융대책반회의를 열고 북미정상회담 취소에 따른 금융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윤면식 부총재는 "전날 미 증시가 낙폭을 되돌린 점이나 한국물 지표 움직임을 보면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경제여건이 부진한 상황에서 북미회담 취소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다면 금리 인상 여건은 악화할 수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전일 발표한 통화정책방향에서 앞으로 살펴볼 변수로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 주요국과의 교역여건, 가계부채 증가세, 지정학적 리스크"를 꼽았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맨 끝에 언급됐지만, 북미회담 취소 이후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주열 총재는 5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3% 성장률을 전망했던) 지난 4월 전망을 수정할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대내외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진 것은 사실이어서 불확실성에 유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이 총재의 발언은 기준금리 인상 여건이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해석됐다.

올해 7월이나 8월에 한은 금리 인상을 예상했던 외국계투자은행(IB)들도 일제히 인상 전망을 철회하거나 금리 동결 전망을 유지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한은이 오는 8월에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거둬들였다. 5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문이 비둘기파적이었다는 판단에서다.

소시에테제네랄(SG) 역시 한은이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금리를 인상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미회담 취소로 6월 이후의 경제여건은 불확실성이 크다.

최근 하반기 경기침체를 바라보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LG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을 비롯한 민간 연구기관들도 투자 감소와 제조업 생산 악화, 수출감소세 등을 경기 하강요인으로 언급했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마저 겹친다면 사실상 금리 인상은 어려워진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은 북미회담 취소에 따른 정치적 이슈를 현시점에서 바로 판단하는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오석태 SG이코노미스트는 "북미회담 취소는 현재 진행 중인 이슈여서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이러다 휴화산처럼 가라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경제성장률이 연 3%에 못 미칠 수 있는 상황이고, 2%대 후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라 하더라도 한은이 마이웨이로 금리 정상화를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신동준 KB증권 수석 자산배분전략가는 "북미정상회담 취소는 협상용 카드로 볼 수도 있고, 정치적 이슈가 금리 인상에 걸림돌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가을께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시장 분위기가 전환되면 한은이 1회 정도 금리 인상에 나설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올해 금리 인상을 하지 않으면 한미 금리 역전폭이 100bp로 확대될 수 있다.

미국이 연말까지 2회만 기준금리를 올려도 한미 금리역전폭은 75bp다.

만약 미국이 가속 페달을 밟아 연 4회 인상에 나선다면 연내 100bp까지 금리차가 벌어질 수 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3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올해 한미금리 역전폭이) 최대 1%포인트 날 수 있는데 이것은 상당히 큰 차이"라며 "한미 금리 역전 폭이 크거나 장기화하면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향후 북미회담 취소 이후의 상황이 원화 자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FX애널리스트는 "금통위에서는 3% 성장률을 고수했지만 하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국내 경기만 놓고 보면 오히려 금리를 인하해야 할 상황으로 보이는데 미국과의 금리차를 고려해 하반기 1차례 금리 인상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미회담 취소는 기대가 이미 가격에 반영된 상태라 당분간 한국 자산 전반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분간 롤러코스터장에 대한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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