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김명선 기자 = "어느 간 큰 사람이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만나겠습니까. 금융기관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금융당국 임직원이 퇴직임원이나 금융기관 관계자 등을 만나면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이 시행되면서 시장과의 소통 단절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업무 특성상 피검기관과의 접촉이 많은 금감원의 경우 보고가 부담되거나 접촉이 제한되는 것이 두려워 아예 만남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등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와 금감원이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을 정식 시행한 지 20일가량 지났지만, 감사담당관과 감찰실에 보고된 건수는 5건 미만으로 극히 미미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고 사례가 있긴 했지만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이라며 "아직 미신고 건으로 징계를 받거나 허위신고하는 등 특이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외부인 접촉 규정은 지난해 12월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금융당국 소속 공직자의 외부 이해관계자 접촉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이어 두 번째다.

금융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금융위·금감원 출신 퇴직자, 금융회사 임직원, 법무·회계법인 소속 변호사·회계사 등을 만나거나 연락했을 때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반할 경우 금융위원장 또는 금감원장이 해당 외부인과 1년 이내 접촉 금지 명령을 내리는 등 징계 조치하게 된다.

금감원 임직원들은 규정이 시행된 이달부터 아예 금융기관 등과 만남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한 금감원 임원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지난달 안에 몰아서 보고 이달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자리를 만들지 않고 있다"면서 "경조사나 토론회, 세미나 등 보고대상에서 제외되는 만남이라 하더라도 일단 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시행되는 규정이다 보니 세부지침이 모호하고 어떻게 악용될지 몰라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운 눈치다"며 "직원 보호장치가 아니라 올가미를 덧씌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융기관 감독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하다 보니 금융위보다 외부인과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규정을 공통으로 적용하는 데 대한 불만도 많다.

윤석헌 원장도 이러한 문제점에 공감하고 금감원 업무 특성을 반영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을 강조해 왔다.

이에 금감원은 팀장급 이하 직원이 상급자 요청 때문에 외부인을 접촉,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처벌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상급자 동행' 규정을 추가하고 최초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징계를 받기 전 '경고' 단계를 거치도록 했다.

하지만 금감원 임직원들이 규정을 의식하지 않고 감독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장치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금지행위 자체가 애매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회사 직원은 "금감원이 업계를 이해하고 소통을 활발하게 하겠다고 하지만 접촉 자체를 꺼리면서 최근 들어 오히려 분위기가 경직됐다"면서 "실무자들이 현장 목소리 듣는 것도 어려워하면서 어떤 식으로 소통을 해나가겠다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감찰실 관계자는 "소통과 외부인 접촉 제한 두 가지 가치가 상충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제도 시행 3개월은 지나야 실효성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며 조직 내 검토와 피드백 과정을 계속 시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