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용평가사는 금융시장의 소금 기관이다. 신용평가사가 제 몫을 하지 못하면 시장 질서를 교란할 수 있어서다.

국내 신용평가시장에서 선두 다툼을 벌이며 소금 기관을 자처한 나이스(NICE)신용평가가 소금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차이나 에너지 리저브 앤드 케미컬스(CERCG) 자회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처리되면서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28일 디폴트를 선언한 CERCG 자회사의 ABCP에 'A2' 등급을 부여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중국 지방 공기업인 CERCG의 신용등급도 `A'로 평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CERCG에 대한 정부지원 가능성을 '보통'으로 평가했다"면서 "최종신용등급은 산업별 평가방법론을 적용하여 평가한 자체신용도 대비 1단계(notch) 높은 수준인 A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신용평가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별 공기업 개념의 차이가 아니라 정부지원 가능성에 대한 평가"라고 강조했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이 해명이 등급평정의 적정성에 대한 시비를 해소하기에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해당 기업이 이미 홍콩에서 발행한 달러채권의 경우 무등급이고 금리 수준도 하이일드 수준이라는 점이 반영됐는 지 따져봐야 한다는 게 금융시장의 진단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금융시장의 건전성 강화를 위해 공사채와 회사채 시장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할 사안으로 지목됐다.

텐진(天津)시 지방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진 지방정부금융회사(LGFV)도 5억위안에 달하는 신탁대출 절반을 상환하지 못했다. 중국 정부가 디레버리징 정책을 강화하면서 중국 공사채 시장도 이미 균열 조짐을 보였다. 홍콩 금융시장 참가자 등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가 발행한 채권도 거래가 부진해진지 오래됐다.

CERCG는 홍콩금융시장에서 비공식적이지만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된 지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CERCG가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서다. CERCG는 홍콩 최대 갑부인 리카싱이 소유하고 있던 '더 센터' 건물을 402억홍콩달러(약 5조7천억원)에 사들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세계 부동산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체결된 거래였기 때문이다. CERCG는 '더 센터' 매수를 위한 컨소시엄의 지분 55%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시장참가자는 홍콩금융시장 등을 통해 CERCG에 대한 레퓨테이션 체크를 좀 더 면밀하게 했다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금융시장에서 종사했던 관계자는 "나이스신용평가가 중국에 대해 얼마나 깊이있는 리서치를 하고 평가한 것인지가 의구심의 출발점이고 가장 큰 문제점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 이해도가 깊은 전문가라면 이런 결론을 내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소금 기관이 소금이기를 포기하면 재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무디스와 S&P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제 몫을 못한 결과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본래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소금 기관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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