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영국은 왕이 처형당하고 올리버 크롬웰이 공화국을 세운 정치적 격변기였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맹아가 된 인클로저 운동이 한창이었다. 혁명가, 사상가, 선동가들이 백가쟁명 하다 잊혀 갔다. 그 중 수평 파라는 급진적 무리를 이끄는 제라드 윈스턴리(Gerrad Winstanley)가 있었다. 그는 폐허가 된 공유지를 점거·경작하고 팸플릿을 쓰며 땅의 사유화에 저항했다. 확고한 기독교 신앙에 기초해 신이 인간에게 준 땅에 대한 애정을 일관하는 그의 소박 하면서도 완고한 주장에서는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 유럽인들의 경제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윈스턴리의 팸플릿에서 이런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매매의 경우 속임수이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매매란 '나쁜 말이나 암소, 혹은 무언가 나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시장으로 가져가 소박하고 마음이 순박한 사람 등을 속인 후 집에 오면서 자신의 이웃이 손해 입었음을 비웃는' 것이다(김윤경 옮김 <자유의 법 강령>). 상업의 부가가치 생산을 부인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시각이 깊이 남아 있다. 조선 왕조는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산업에 비해 유독 상업을 낮게 여겼다. 조선 후기의 실학이라고 달랐을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박제가를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상업을 옹호했던 실학자는 찾기 어렵다고 한다. 실학도 공맹의 가르침을 능가하는 원리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조선,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산업화가 늦어진 이유로 유교적 정치사상을 꼽는다. 하지만 윈스턴리의 예에서 보듯이 과거에는 서양에서도 경제에 대한 관념이 동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날 거의 모든 동서양의 사람들은 시장경제체제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작동원리를 모두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치 우리가 매일 컴퓨터와 스마트폰, 인터넷을 쓰고 있지만, 그 작동원리를 제대로 알기는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농업이나 공업은 노동을 들여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이지만, 단지 물건을 교환할 뿐인 상업이 후생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회적 후생의 총량은 일정하고 누가 이익을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 때문에 상업은 비천하다는 설명이 직관에 더 부합한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과학에 입각한 경제학자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러한 직관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들 경제학자는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질서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수요자와 공급자의 후생을 극대화함을 증명함으로써 직관과 과거의 신념을 뒤흔들었다.

글솜씨 좋은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직관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자본주의라는 어려운 주제를 이해시키려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근대 경제사의 혁명성을 압축하는 키워드로 '성장'을 들고 있다. 그리고 성장을 가능하게 한 미래에 대한 신뢰, 자본의 재투자, 금융의 발전과 신용 개념의 등장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제도의 혁명이자, 인간이라는 종(種)의 인식과 믿음에서의 혁명이었다. 우리는 그 혁명의 결과물 위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들 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도 자신의 시대가 격변기이고 변곡점이라고 생각되겠지만, 2018년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해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국민국가를 넘어 하나의 세계국가로 통일되어 가는 모양새이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임박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를 거쳐 2030년, 2040년이 되었을 때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민국가가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가 보지 않은 길의 나침반으로 삼기 위해 역사책을 펼쳐 본다. 미래를 상상하기 위하여 공상과학 영화를 볼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과거의 역사가 요긴한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시스템의 구성요소 각각이 직관과 과거의 지배가치가 투영된 것인지, 또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속성, 아니면 과학과 이성에 기초한 것인지를 꼼꼼하게 분별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감당하기 어려운 격변 앞에서 그 시스템을 유연하게 적응·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옛말의 의미를 더 강렬하게 몸으로 느낀다. (성대규 보험개발원장/前 금융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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