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 칼럼> 믿음과 신뢰의 구르카 용병처럼
<이성규 칼럼> 믿음과 신뢰의 구르카 용병처럼
  • 이성규 기자
  • 승인 2018.06.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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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세기의 담판'으로 불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북핵 담판 외에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바로 싱가포르 당국에서 제공한 경호였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과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은둔의 지도자를 경호하는 일이었던 만큼 회담 개최국인 싱가포르가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아마 경호였을 것은 분명하다.

회담장과 숙소 주변 경호는 당연히 싱가포르 경찰이 맡았지만, 이들 사이로 구부러진 단검 쿠크리(khukri)를 든 구르카 용병들이 눈에 띄어 화제를 모았다.

정상들의 경호와 각국 VIP 안전을 다른 나라 용병에게 맡기다니 우리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돈 되는 일만 할 뿐 명예와 사명감 따윈 없는 게 용병 아니던가. 그런데 각국 지도자의 경호를 용병들에게 맡기다니 모든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역사와 구르카 용병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싱가포르는 영국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세운 영연방 국가 중 하나다.

영국과 구르카 용병은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네팔 구르카 지역 출신들로 구성됐다고 해서 구르카 용병이라 불린 이들은 영국군의 일원으로 포클랜드 전쟁부터 2차 대전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이 기간에 무려 20만 명의 구르카 용병이 영국군을 위해 싸웠다. 구르카 용병은 6.25 전쟁에도 영국군으로 참전했다. 그런 이들이 적국이었던 북한의 지도자를 경호할 줄을 몰랐을 것이다.

여하튼 정글이나 산악 지역 등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근접전이 일어나면 구르카를 상대할 군대는 없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싸움만 잘한다고 구르카 용병을 영국이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구르카 용병은 영국 국민에게 믿음과 신뢰의 대명사다.

1차 대전 당시 구르카 용병의 활약상은 영국 내에서도 유명하다. 영국군 부상병을 몸집이 왜소한 구르카 용병 한 명이 업고 적진에서 구출하고 다시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으로 뛰어가 또 다른 부상병을 구출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독일군 병사들마저도 구르카 용병에게 박수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 용병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영국 왕실로부터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수여 받는다.

영국 런던 관청가인 화이트홀(우리나라의 세종로와 같은 곳)에 가면 자국 장군(지휘관) 동상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구르카 용병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이 동상 아래에는 '용감한 자 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 신실한 친구 중에 가장 신실한 친구, 우리에게 너희처럼 좋은 친구는 없다'는 문구가 있다. 영국인들이 구르카 용병들을 얼마나 아끼고 믿으며 사랑하는지 잘 보여주는 문구다.

북미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안전이라는 빅딜을 이뤄내진 못했다.

그래서 이번 회담을 실패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비판 또는 실망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다.

양국 정상은 70년간 적대적 관계를 딛고 이제 신뢰와 믿음을 구축하기에 한 발짝 나아갔다. 앞으로 양국이 신뢰와 믿음을 더욱 쌓아가며 만난다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반드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구르카 용병에게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었던 양국 정상 아닌가. 이 또한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간 미국과 북한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적대로만 서로에게 반응했다.

이제 미국과 북한은 믿음과 신뢰를 구축하는 단계다. 이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그 시간표를 구체적으로 확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도 미국과 북한의 가교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정책금융부 부장)

sg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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