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차게 시작했던 2018년도 어느새 반환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 해의 절반이 마무리되는 이 무렵에 관한 학창시절의 기억은 항상 기말시험과 관련돼 있다.

소심한 성격 탓이 크겠지만, 시험 기간에 갖게 되는 심적 부담감은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연수원을 수료하면서 제일 기뻤던 것 중의 하나도 '이제 더 이상 시험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측면에서는 직업을 다소 잘못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 변호사에게는 특히 M&A의 변호사에게는 일상의 모든 업무가 시험과 같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에는 한두 개 틀려도 괜찮았지만 M&A 변호사가 내놓는 답변은 틀리면 안 되느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소심하기는 해도 스트레스 때문에 크게 힘들어하지는 않는 스타일인데, 저년차 어소시에이트(Associate) 변호사 시절에는 이러한 업무 환경이 꽤 힘들게 느껴졌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차츰 힘이 덜 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업무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탓만은 아니었던 것 같고, 다른 비결에도 힘입은 바가 큰 것 같다.

그 비결은 학창 시절에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던 비결과도 같은 것이다. 대단한 비결은 아니고, 출제자의 의도에 대해 항상 각별히 유의하고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좀 더 분명하게 깨닫고 최대한 실천한 것이다.

변호사 업무에 있어서 출제자의 위치에 있는 것은 고객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 변호사의 자문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된다면 마치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정답을 써 내려가는 학생처럼 고객이 필요로 하는 답변을 적절히 줄 수 있게 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고객과 수시로 편하게 직접 소통하는 것이다. 글보다는 대화, 전화보다는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확실히 도움된다.

M&A 자문과 같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영역에서는, 고객의 의사를 정확히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 많고, 때로는 고객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고객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 의사를 물어야 할 때가 많아서,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변호사가 고객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메일이나 질의서 등 이미 제공된 서면 자료만으로는 고객의 의도를 정확히 또는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분명한 상황임에도, 단순히 바쁘다거나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쑥스럽다는 이유로 고객과 직접 소통하지 않고 이미 제공된 자료만을 기초로 고객의 의사를 임의로 추측하고 가정한다(고객이 제공한 서면 자료도 제대로 읽지 않아 고객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출제자에게 그 의도를 물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출제자에게 그 의도를 직접 물어볼 수가 없다. 부득이 그 의도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호사는 다르다. 출제자인 고객에게 몇 번이고 정확한 의도를 물어보고 확인을 구할 수 있다. 수험생보다는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좀 더 좋은 성과를 낼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좋은 기회는 최대한 잘살려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답변을 줄 수 있고, 실력 있는 변호사로 대우받을 수 있다.

다만, 고객과 직접 소통함에 있어서는 각별히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스스로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대화 과정에서는 표정이나 목소리 등에 그 사람의 생각이 묻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서비스 마인드를 제대로 갖추고 대화하지 않으면 자칫 고객에게 거만하거나 고압적인 인상을 주어 그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이 잘못 생각하는 것을 바로잡아 주거나 고객에게 고객이 모르는 사항을 가르쳐 주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 그와 같은 상황의 특수성으로 인해 거만하거나 고압적인 느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좀 더 높기 때문이다.

서비스마인드로 무장한 상태에서 고객과 최대한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이미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기본 자질을 갖춘 셈이다. (법무법인 광장 김유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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