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황윤정 최정우 기자 = # 개인투자자 A씨는 지난달 28일 가족 명의로 된 통장을 바리바리 챙겨 미래에셋대우 지점을 방문했다.

방탄소년단 기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해 큰돈을 번 벤처캐피탈(VC) SV인베스트먼트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청약 후 이틀 정도면 환불을 받을 수 있어 일단 청약 계좌를 최대한 늘린다는 나름의 전략도 세워놨다.

같은 시각 개인투자자 B씨도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몇 장의 청약 신청서를 옆에 두고, 청약에 응하는 지인의 신상을 기재하느라 분주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모주 청약이 과열 양상을 보이며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가족 명의 계좌는 물론, 소위 말하는 '사돈의 팔촌' 계좌까지 이용해 배정 물량을 늘리고자 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런 모습은 최근 진행된 SV인베스트먼트 청약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 증권사 영업점 직원은 "이 벤처캐피탈이 방탄소년단 소속사에 투자해 유명해지면서 일반인 청약 물량이 매우 많았다"며 "지인과 가족 등의 계좌를 가져와 한 번에 여러 건의 청약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모습은 거의 관행이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활성화 정책인 '코스닥 벤처펀드' 등이 인기를 끌며 공모주 시장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자산운용사 등 기관 투자자들은 기업공개(IPO) 물량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보호예수 조건을 활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기관 투자자들의 물량 확보 경쟁이 지속하면서 '벤처펀드 수혜'를 노리며 공모주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 공모 청약 경쟁률이 1천 대 1을 넘어선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했으나, 올해에는 벌써 4건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큰손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공모주 '묻지마 투자' 행태도 속출했다. 공모주 투자의 경우 수억 원의 증거금을 내고 청약에 나서야 하지만, 며칠 후 증거금이 반납되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다시 다른 공모주에 투자하는 것이다.

차명 거래 금지법상 한 명의 개인이 여러 개의 계좌로 청약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공모주의 경쟁률을 높이고 이것이 버블로 이어져 주가 급변동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A 증권사 관계자는 "거의 늘 공모주에 투자하는 사람이 재투자하고는 한다"며 "수십 개의 계좌를 들고 와 막무가내로 공모주에 청약하는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지점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상당하다"고 하소연했다.

B 증권사 관계자도 "공모주 투자가 장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상장 후 2~3주 이내에 단기 매도하는 것"이라며 "이에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락하는 사례도 많아 변동성이 매우 높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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