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의 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들이 평생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할 때 손에 쥐는 퇴직금을 연금 형태로 받게 하는 제도이다.

퇴직금을 미리미리 잘 운용되게 해 근로자들이 은퇴 이후 생활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현실은 운용 성과가 미미해 은퇴 시 퇴직금으로 받는 목돈과 큰 차이가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 관계 당국에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운용의 개선책을 마련하려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국내 퇴직연금 규모는 2017년 말 현재 168조4천338억 원.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연금 유치를 하다 보니 퇴직연금 시장규모는 2010년 30조 원에서 5배 이상 확대됐다.

단지 운용 성과가 선진국보다 너무나 부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기예금 수준으로 운용되어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6월 말 기준 실적배당형인 DC형(Defined Contribution·확정기여형) 퇴직연금 펀드의 운용수익률은 호주가 10.3%, 미국이 13.4%인데 한국은 2%에 지나지 않고 있다.

과거 필자가 호주 멜버른에 있는 연금기관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연금운용자들에게서 받은 특별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것은 호주 연금운용자들은 연금수급자의 입장에서 운용 철학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국내 퇴직연금의 성과를 논하기에 앞서 국내 연기금들과 보험사들 개인연금의 운용 실상도 대부분 해외 경쟁국들에 비하여 초라한 수준이다.

왜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걸까? 이에 대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자산 배분에 대한 규제가 너무나 엄격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연기금 운용에 대한 인식이 감독기관, 운용기관, 수급자 모두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산 배분의 규제는 투자대상을 아직도 포지티브 체계로 운용하게 하는 결과이다. 즉 투자대상을 명시하고 그 밖의 투자는 못 하게 하는 것이다. 호주를 비롯한 연금 선진국들은 주식, 채권 및 대체자산인 부동산, 인프라 자산은 말할 것도 없고 헤지펀드도 자유롭게 투자하게 한다. 투자자산별 투자 비중도 투자기관이 책임지고 위험관리를 하게 하는데 국내는 제시된 모범 자산 배분을 무조건 따르게 하니 결과는 부실하고 투자기관별 투자수익률 차이도 거의 없게 된다. 미래의 연금수급자들이 DC형을 선택한다 해도 자신의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선택 폭이 그만큼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기금 운용 관계자들 역시 연금운용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부족하다. 즉 연기금은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기금이며 투자수익률 역시 소위 무위험 자산인 정기예금에 비해 위험 프리미엄 이상 당연히 높게 가져야 한다는데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의 DC형 비중이 8.4%에 지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여러 자산을 포트폴리오로 구성하여 장기투자를 하는 경우 원금 손실이 거의 없다는 것은 경험적 사실인데도 연금자산에 원금보장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호주는 회사가 책임지는 원리금 보장형인 DB형(Defined Benefit·확정급여형)이 오히려 위험이 크다고 보아 DC형이 주류를 이루는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왜냐하면, 선진국에서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 성장할 수 없는 경우 퇴직금이 부실해지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노령화 속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빈곤율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높다. 이를 완화하는 방법은 각종 연금자산의 관리와 운용 수익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

최근 들어 출생연도가 1955년에서 1963년생 이후를 지칭하는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하고 있다. 올해도 실업급여가 6월 말 현재 지난해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은퇴자들의 대부분은 국민연금을 받기에는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주택연금 역시 만 60세가 넘어야 자격이 된다. 운용수익률이 예금이자 수준이지만 개인연금 역시 일정 시점이 지나야 한다. 은퇴한 후 직접 혜택을 볼 수 있는 근로자들의 연금자산은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을 장기적으로 수익을 높일 수 있도록 종래의 계약형에서 기금형으로 재편한다는 정책구상은 올바른 정책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퇴직연금이 기금형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먼저 기금형으로 관리해야 수익추구형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익추구형이라서 무조건 공격적으로 운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익과 위험관리를 노사협의체를 통하여 전문운용자들이 책임 있게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또한, 회사가 책임지는 연금자산을 객관적인 제삼자가 운용하게 해 회사의 경영 부실이 연금자산으로 파급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다양한 투자자산을 시장 국면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자산으로 운용할 수 있게 끔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공모펀드들이 사모펀드보다 규제도 많고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연금 자산들도 발 빠르게 수익성이 좋은 다양한 사모펀드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 밖에 근로자들은 자신의 노후자금인 퇴직연금의 운용 감시자로서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 연금자산운용 담당자들 역시 경쟁적으로 투명하게 연금자산 증식을 위한 실질적인 청지기 역할을 할 수 되기 때문이다. (이찬우 국민대 특임교수 / 前 국민연금공단 기금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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