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 유입으로 설비투자 줄면서 경제성장률도 후퇴

단기주주 입김 줄이고 장기투자에 의결권 더 줘야



(서울=연합인포맥스) 황병극 기자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국내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은행산업을 바꿔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손쉽게 돈 벌 기회를 줄임으로써 은행이 기업대출을 더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 교수는 10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서 "외환위기 이후 설비투자가 급감하면서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급격하게 후퇴했다"고 진단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는 1인당 국민소득 기준 경제성장률이 6%를 넘었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2∼3%대로 떨어졌는데, 이는 외환위기 이전 14∼16% 수준이던 국민소득 대비 설비투자 비율이 7∼8% 수준으로 반 토막 났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국내에서 설비투자가 급감한 배경으로 외환위기 이후에 전개된 금융시장의 개방과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꼽았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이 세어졌고, 이들이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면서 대기업의 장기투자가 힘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또 "기업구조정책이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복잡한 소유구조를 가진 한국 대기업들은 단기 주주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목했다.

장 교수는 "대기업의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외국 투기자본 등 단기 주주의 입김을 막기 위해 장기 주주에게 기하급수적으로 가중의결권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 이하 보유주식 1주에는 1표, 2년 보유는 1주에 2표, 3년 이하는 5표, 5년 이하는 10표 등 보유 기간에 따라 의결권에 차등을 두자는 주장이다.

그는 "자본 이득세를 크게 감면해주는 제도 등을 도입해 장기주식 보유를 장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재계에서 도입을 주장한 포이즌필, 황금주 등은 결국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논리에 기반해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방어장치가 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오히려 "국민연금 등 공공성을 가진 대규모 투자자들이 국민경제적 입장에서 주요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것이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은 이율배반적이다. 똑같이 돈을 가지고 주주권 행사하는데 왜 노동자가 하면 사회주의고 자본가가 하면 자본주의인가"라고 따졌다.

장 교수는 설비투자 감소의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국내 금융산업을 꼽았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자유화되면서 은행들의 대출에 대한 정부 규제가 없어지자, 은행들은 위험이 큰 기업금융 대신 '앉아서 돈 버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소비자 금융을 주로 하기 시작했다"면서 "은행대출 중에서 기업대출 비율은 1990년대 초 90% 수준에서 30~40% 선으로 떨어졌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은행권의 보수적인 대출행태가 결국 은행대출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의 투자가 어렵게 만들었다고, 한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소비자 대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은행이 기업대출을 더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독일처럼 지방정부, 지역사회, 지역기업이 공동 소유하는 비영리 금융기관을 많이 만들어 중소기업대출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 교수는 또 "대부분의 선진국은 안 하는 척하면서 연구개발 지원, 장기금융 지원 등과 같은 산업육성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유치산업인 최첨단 산업은 관세, 보조금 등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경제는 큰 전환점에 서 있고 계속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한국 유망산업은 선진국의 장벽을 뚫지 못하고, 주력 산업은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선진국들이 우위를 점한 제약, 기계, 부품, 소재 산업 등에는 우리 기업들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고, 주력 산업인 조선, 철강 등은 중국에 크게 잠식당했고, 반도체도 중국의 투자로 한국의 우위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고 봤다.

그는 "반도체 생산은 세계 1위이나,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는 아직도 일본, 독일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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