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금융감독원이 소비자보호를 내세워 다수 피해자 일괄구제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보험사들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지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금감원은 민원·분쟁 등에 대한 사후규제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금융회사는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암 보험금 지급 등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11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보험사가 약관과 달리 보험금을 적게 지급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 대해 일괄구제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최근 금감원에 공문을 보내 이달 중 이사회를 열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의결을 통해 추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일괄구제는 다수 소비자가 동일한 유형의 피해를 본 경우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일괄 상정해 구제하는 제도다.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구제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불편함을 덜 수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11월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지급하라는 조정 결정을 받았고 지난 2월 조정을 받아들였다.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매월 연금을 받다가 만기가 되면 처음에 냈던 보험료 원금을 전부 돌려받는 구조다. 아무리 금리가 떨어져도 2.5%의 최저보증이율을 보증하는 상품이었음에도 보험사는 금리가 낮아지자 이에 못 미치는 보험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나 민원이 이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장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시간을 충분히 줬음에도 아직 지급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 조치토록 한 것"이라며 "NH농협생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험사가 해당하므로 누락된 지급금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빅3 생보사는 물론 중소형사들도 미지급금을 추가 지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는 삼성생명 고객은 약 5만5천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 생명보험사로는 약 15만 명에 이른다.

삼성생명의 미지급 보험금은 약 4천억 원, 보험사 전체로는 7천억~8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괄구제 제도를 도입하면 2천만 원 이하 소액 분쟁에 대한 분조위 결정을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분조위 결정이 권고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강제 효력이 생기는 셈이다.

금감원은 생보사들이 추가 지급을 계속 미룰 경우 현장점검 등 추가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보험사들은 불만이 많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분쟁 현안에 대해 금감원이 소비자보호라는 명목하에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쪽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암보험금도 마찬가지다.

윤석헌 원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부당한 보험금 미지급 사례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겠다"면서 "암 보험금 지급에 대해 보험사들이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약관상 보험금 지급이 가능한 건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 이번 주 안으로 제출하라고 보험사들에 요청했다.

지난달 말 기준 암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은 1천 건에 육박한다. 말기암 환자가 퇴원 이후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 항암치료 과정 중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 등이 주요 쟁점이다.

보험사들은 요양병원에서는 직접적인 암 치료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암 보험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맞서고 있지만, 금감원은 최대한 보험금을 지급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보험금을 줄 수 없는 게 맞지 않느냐"면서 "소비자보호도 좋지만 무조건 분조위 결정에 따르라는 것은 자율 경영을 무시하는 것이며 또 다른 부작용도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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