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다음 달부터 밴(VAN) 수수료가 정률제로 바뀜에 따라 카드사들이 일부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인상한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대형가맹점들과 수수료율 인상과 관련해 협상 개시 조차 못 하고 있다.

기존 계약 기간 해지 시 위약금을 물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악에는 가맹점 계약 중단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카드사와 가맹점 간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12일 금융당국 및 여신업권에 따르면 신한·삼성·KB국민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은 대형가맹점에 수수료 인상요인을 통지하지 않거나 조정 단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A 카드사 관계자는 "주요 대형가맹점에 아직 수수료 인상분을 통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달 말까지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올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B 카드사 관계자는 "가맹점과 맺은 기존 계약 기간이 있으므로 이 기간이 끝나야지만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라며 "카드사들끼리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31일부터 카드 수수료 산정 시 밴수수료 항목이 정액제 대신 정률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대상은 영세·중소 및 특수가맹점을 제외한 일반가맹점 35만 개다.

결제금액에 비례해 수수료를 부과하는 정률제로 바뀌면 소액결제가 많은 편의점, 슈퍼마켓, 약국 등의 수수료는 낮아지고 자동차, 대형마트, 백화점, 골프장 등의 수수료는 늘어나게 된다.

수수료를 낮추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가맹점 입장에서 그만큼 비용 부담이 적게 들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카드사 입장에서 대형가맹점의 수수료를 올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초대형 가맹점은 막강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카드사에도 '갑'으로 통한다. 대규모 고객을 거느린 초대형 가맹점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카드사들도 수익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가맹점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카드사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대형가맹점과의 개별 협상 과정에서 사실상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대형 카드사 관계자는 "보통 가맹점과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데, 수수료가 인하되는 가맹점은 이달 안에 모두 조정할 수 있지만 대형가맹점은 기존 계약을 깨고 수수료를 인상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결국 수수료 수익 악화를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영세 가맹점의 수수료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되어 있지만, 대형가맹점 수수료 인상은 시장 자율이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에는 영세 및 중소가맹점 수수료는 법으로 규정되고, 나머지는 적정원가 이하로 수수료를 책정하지 못한다는 정도로만 규정되어 있다.

카드사들은 가맹점 해지 또는 가장 낮은 수수료율을 제시한 일부 카드사와만 재계약을 맺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신가맹점 수수료 체계 도입 당시에도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을 0.5%포인트 높이려다 가맹점 계약 중단 사태 등이 벌어진 바 있다.

금융당국은 수수료 인상은 카드사와 가맹점 간 자율계약이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수수료 개편안에 따라 이달까지 모든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 조정을 완료하면 좋겠지만, 기존 계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개별 협상을 통해 대형가맹점의 수수료를 인상하는 부분까지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