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일자리 창출과 함께 가계부채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핵심 경제ㆍ금융 현안 중 하나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가계부채 문제 해소를 위해 관련 부처는 물론이고 정치권, 학계에서도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1천3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한해만 140조원이 늘었다.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정부는 집을 사고자 하는 수요자를 어떤 형태로든 불편하게 만들려 하고 있고, 집을 보유한 국민에게는 세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라는 지침까지 내려 정작 주택 실수요자들인 서민들은 고금리 시장에 내몰리며 또 다른 사회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옥죄 보겠다는 제스쳐를 시장에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금리 인상은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며 회의적이던 정부마저 금리가 올라가면 고삐 풀린 가계부채도 진정될 것이라는 스탠스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다.

일련의 조치가 실제로 실행된다 하더라도 정부의 의도대로 가계부채가 줄어들까? 백번 양보해 정부의 각종 규제, 금리 인상 효과가 먹혀들어 가계부채 증가세가 '제로'였다고 치자. 1천300조원이란 괴물이 되어버린 가계부채는 연 3% 이자만 해도 자연증가분이 연간 40조원에 달한다.

가계부채는 증가세를 억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소시켜야 할 대상이다.

20세기 위대한 천재 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현재 가계부채 문제를 놓고 대안 없이 우리 사회가 벌이는 공방도 어쩌면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즈음에 발상의 전환을 한번 해보자고 정책 당국에 제언한다. 퇴직연금법을 손보자고 말이다.

퇴직연금법은 2005년 12월 1일부터 시행됐다. 13년 동안 쌓은 적립금만 150조 원이 넘는다.

퇴직연금법은 기업 도산에 따른 퇴직금 지급불능 사태에서 근로자를 보호하고 일정 조건이 갖추어진 경우 연금형식으로 받아 국민 자산관리에 도움을 주고 노후 안정을 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 때문에 근로자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해서 퇴직금을 마음대로 찾을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해 퇴직연금법 때문에 집을 보유한 근로자가 금융회사에 빚이 있어도 퇴직금을 찾아 갚을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근로자가 퇴직금을 중간에 찾을 방법은 ▲무주택자가 주택을 사는 경우 ▲무주택자가 주거목적으로 전세금 또는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본인, 배우 또는 부양가족의 질병ㆍ부상으로 6개월 이상 요양하는 경우 ▲최근 5년 이내 파산선고를 받거나 개인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임금피크제를 실시해 임금이 줄어드는 경우 ▲태풍,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 사유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등 6가지로 한정돼 있다.

결국, 현재 퇴직연금법 아래에서 유주택자가 퇴직금을 중간정산하려면 파산하거나, 아프거나, 천재지변을 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퇴직연금법을 개정해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에 '유주택자라도 가계부채를 상환할 경우'라는 항목하나만 추가한다면 현재 가계부채 문제는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 현재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은 연 1%대에 머물고 있는 반면 가계대출 금리는 3%를 훌쩍 넘어섰다. 그것도 1금융권 대출금리가 3%대 수준이다. 가계부채를 떠안은 근로자가 퇴직연금만 기대하다간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텅 빈 노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이처럼 퇴직연금법을 적용받는 근로자(국민)가 어디에다 한정된 소중한 내 돈(퇴직금)을 써야 할지는 자명한 데도 일부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법을 만들었는데 가계대출 상환을 위해 퇴직연금법을 손댄다면 퇴직연금법 제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안은 없이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 노후 안정을 위해 주택연금법을 시행하고 있고, 주택연금은 빚이 있으면 그만큼 차감해서 지급된다는 사실을 관련 부처 공무원들은 모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정책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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