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기자 = 지난주 서울 외환시장 마지막 거래가 끝나고 런던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이 급등했다.

유로와 엔을 비롯해 역외 위안화(CNH)보다 빠른 속도로 절하되면서 순식간에 10원 이상 뛰었고,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동요하는 모습도 관측됐다.

◇ NDF 폭등에 외환시장 '설왕설래'

16일 BGC와 아이캡 등 해외 외환(FX) 중개사들에 따르면 지난 13일 달러-원 1개월 물은 오후 4시경부터 상승해 6시 즈음에는 1,133∼1,134원까지 호가가 나왔다.

현물환 종가 1,123.50원과 1개월 스와프 포인트(-0.80원)를 고려하면 두 시간 만에 10∼12원가량 폭등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관련 발언에 유로 및 파운드가 먼저 절하된 것이 원화 약세를 촉발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연합(EU)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영국의 계획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리는 영국 대신 EU와 거래하고, 이는 미국과 영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죽일(kill)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시장 개장 전에 관련 뉴스가 전해졌지만, 시장 반응은 유럽에서야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당시 원화 변동성은 유로나 파운드, 엔, 위안(CNH), 싱가포르 달러 등 어느 통화보다도 컸다.

서울 환시 마감 무렵부터 오후 6시까지 달러 대비 절하 폭을 보면 원화는 0.8∼0.9% 가치가 하락해, 유로 0.4%와 위안 0.65%를 넘어섰다.

게다가 뉴욕 시장을 거치면서 유로와 파운드는 절하 폭을 모두 되돌렸지만, 달러-원은 1,130원대에서 사실상 내려오지 못했다.

브렉시트 발언이 직접적인 원화 약세 재료가 됐다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수급 요인이 원화 약세에 일조했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주말을 앞두고 무역분쟁 우려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토대로 13일 서울 외환시장 장중에 숏 포지션이 많이 쌓였다는 의견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당시 달러 강세 흐름 속에서 2∼3억 달러의 매수세가 나온 것 같다"며 "이후 숏커버가 빠르게 일어나지 않았나 한다"고 추정했다.

◇ "무역분쟁, 중국보다 한국에 더 큰 파급"

무엇보다 원화 약세의 근본적인 배경으로 미중 무역분쟁을 빼놓을 수는 없어 보인다.

아시아 시장은 간과했지만, 중국의 6월 수출의 세부 지표를 세심히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3일 중국 해관총서는 6월 수출과 수입이 전년 대비 각각 11.3%, 14.1% 증가했고 무역수지는 416억3천만 달러로 연중 최대치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대미 흑자(289억7천만 달러)는 자료 확인이 가능한 1999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였다.

문제는 무역수지 호조가 수출이 늘었다기보다 수입이 감소한 영향이라는 데 있다.

분기 말 재고 확충 수요에도 수입 증가율(14.1%)은 시장 예상을 (21.3%) 벗어났다.

김두언 KB증권 연구원은 "장기전으로 돌입한 무역갈등과 중국 경기 둔화가 원인"이라며 "중간재를 수입해 최종재 형태로 수출하는 가공무역에 이상 기류가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중간재 공급망인 한국에서의 수입은 전년 대비 20.6% 늘어, 5월 31.8% 대비 크게 하락했다는 지표를 근거로 들었다.

전체 가공무역 수출과 수입은 각각 1.7%와 0.6% 증가에 그쳤고, 국경무역은 각각 마이너스(-) 7.4%와 -4.1%로 역성장했다.

차이신 구매관리자지수(PMI) 제조업지수 가운데 수출 주문은 4개월래 처음으로 기준선 (50)을 하회한 49.8포인트(p)를 나타내기도 했다.

최근 국내외에서는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하면 중국보다 아시아의 소규모 개방경제국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킴엥 탄 아태지역 선임이사는 지난 12일 무역분쟁의 직접적인 피해 국가로 대만과 한국, 말레이시아를 꼽았다.

픽텟자산운용은 룩셈부르크와 대만, 슬로바키아, 헝가리, 체코, 한국, 말레이시아 등의 순서로 무역전쟁의 피해가 클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외환시장의 한 전문가는 "중국이 위안화 약세 등 비관세를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데다, 중국 경기 부진 우려도 있다"며 "원화도 약세로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동안의 학습효과로 중국은 급격한 위안화 약세를 막을 자본통제 능력이 있다고 시장이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dd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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