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자금이 필요하다. 자금은 기업이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운영비용을 충당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활동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우리 몸의 혈액과 같은 필수적인 존재이다.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필요 자금을 충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분명 존재하고, 기업은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해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한다. 그러나 이로써 기업의 모든 자금 수요가 충족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의 '돈줄'이 바로 엔젤 투자자, 벤처 캐피탈로 대표되는 지분 투자자(Equity investor)들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이자를 지급하여야 하고 원금 역시 일정 시점이 도래하면 갚아야 하는 차입금에 비해, 이자도 원금 변제기도 없는 지분 투자자의 투입 자금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기업이 채무불이행 상태(Default)에 이르지 않는 한 기업의 실적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금전 대여자보다 기업의 실적에 따라 그 성과(Upside)와 손실(Downside)을 공유하는 지분 투자자는 기존 경영진의 입장에서 볼 때 같은 배에 승선한 고마운 동반자로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금전 차입에 대비되는 지분투자의 위 장점들로 인해, 또한 기존 경영진과 지분 투자자의 건전한 동반자 관계로 인해, 기업의 가치 상승이 달성되는 많은 좋은 선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게 마련이다. 잘못된 지분투자 유치로 인해 오히려 기업의 경영에 어려움이 초래되는 경우들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어려움은 투자계약서의 숨은 '함정'으로부터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무엇이 투자계약서의 숨은 '함정'일까?

한 번 생각해보자. A 기업은 현재보다는 미래의 사업성이 좋은 회사이고 그래서 전망도 매우 밝은 회사이다. 그런데 항상 자금 유동성이 골칫거리이다. 이 상황에서 벤처캐피탈 X가 지분투자를 할 의사를 밝혀 왔다. 단, X는 지분투자의 조건으로 투자계약서의 체결을 요구했다. 지분투자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A 기업은 상당히 많은 알 수 없는 내용이 쓰여 있는 투자계약서 중 X와의 사이에서 합의된 투자금액만을 확인한 연후에 바로 이를 체결해주었다. 약속된 날에 X는 A 기업 계좌에 투자금을 지급했고, A 기업 경영진은 계좌에 찍힌 금액을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이후 A 기업은 전도유망한 사업분야를 발견하였고 해당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그런데 X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사업분야라는 이유로 해당 사업개시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알고 보니, 투자계약서상 새로운 사업에의 진출은 X의 동의사항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A 기업은 해당 사업기회를 포기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 기업과의 사이에서 사업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Y 기업이 A 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및 전략적 제휴관계를 제안해왔다. 그런데 X는 자신의 자금이 좀 더 마련되면 자신이 A 기업에 대한 추가 지분투자를 할 욕심으로 Y 기업의 지분투자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알고 보니, 투자계약서상 제3자로부터 지분투자를 받는 것 역시 X의 동의사항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A 기업은 Y 기업의 위 매력적인 투자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A 기업이 이러한 기회들을 놓치는 와중에 A 기업의 기존 사업이 하락세를 타게 되었고, 이때부터 X는 사사건건 경영에 개입하면서 자신이 보유한 A 기업 지분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처분하고 자금 회수(엑시트)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압박을 가해왔다. A 기업이 거절하고 있는 사이, X는 A 기업의 투자계약서상 사소한 보고의무 위반을 핑계 삼아 A 기업에 거액의 위약벌 배상을 요구해왔다. 알고 보니, 투자계약서상 아무리 사소한 계약 위반이 발생하더라도 A 기업이 X에 거액의 위약벌 배상을 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A 기업은 그제야 투자 전문 변호사들에게 여러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이미 투자계약이 체결된 이상 A 기업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부정적 의견만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위에서는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매우 쉽고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았다. 그러나 조항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용어 하나하나도 세심한 고려 끝에 선택되고 사용되는 투자계약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투자계약서의 숨은 '함정'을 찾아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유기적 복합체인 투자계약서는 그 문언 외에도 협상 과정에서의 당사자들 간 논의 및 기업의 특수한 상황 등 현실에서의 각종 요소가 종합적으로 함께 고려될 때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가진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일반 기업가들이 투자계약서의 숨은 '함정'을 찾아내기란 참으로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분투자 유치를 위해 투자계약서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투자계약서의 행간에 숨겨져 있는 법적 의미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는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반드시 받자. 그러한 도움은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노하우를 가진 투자 전문 변호사로부터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해도 적어도 기본적인 법률 소양을 가진 주변 변호사 지인과 함께 투자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노력은 기울이도록 하자. 사업적으로 전도유망한 기업들이 섣불리 지분투자를 유치했다가 결국 투자계약서의 '함정'에 빠져 더 나아가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장호경 변호사)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