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민재 기자 = 국내 정유·화학기업들이 바이오·제약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학제품 수요 증가와 세계 경기 회복세 등 업황 호조에 힘입어 잉여 현금이 축적된 지금이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 부문에 투자할 수 있는 적기라고 평가했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는 최근 미국 바이오·제약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앰팩(AMPAC)'을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유상증자 5천억원과 인수금융 3천억원을 포함해 약 8천억원대로 추정된다.

이로써 SK는 바이오사업 부문에서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텍, 앰팩을 100% 자회사로 두게 됐다. 이들이 낼 시너지 또한 향후 실적에 긍정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SK는 바이오·제약 사업에서 활발한 투자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해엔 SK바이오텍이 1천700억원을 들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인수했다. 올해 초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년간 헬스케어 부문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그룹 제약사업은 SK케미칼이 맡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달 전문성 강화를 위해 백신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SK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했다.

SK는 의약품 연구개발에서 생산·판매·마케팅을 아우르는 종합제약사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SK는 지난해 인수한 아일랜드 BMS의 생산시설(약 40만리터)과 약 60만리터 규모의 미국 앰팩 설비를 합할 경우 100만리터의 CDMO 업체로 단숨에 부각할 것"이라며 "SK바이오팜, SK바이오텍 등 바이오 계열사와 바이오 사업 역량 강화 및 시너지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학업계 맏형인 LG화학도 바이오 사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LG화학은 앞서 지난해 레드(제약 및 백신)·그린(농화학)·화이트(에너지) 부문의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오는 2025년까지 그린 바이오에서 3조원, 레드 바이오에서 2조원 등 연 5조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세계 주요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게 목표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LG화학의 중장기적 변화 방향으로 에너지·물·바이오 분야를 선정했다"며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 M&A를 포함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4월 4천여억원에 팜한농을 인수한 LG화학은 이듬해 잇따라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했다.

그린바이오에 이어 신약 등 레드바이오 사업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실제로 LG화학은 최근 일본에서 엔브렐사의 에타너셉트 기반 바이오시밀러 제품인 유셉트의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 출시된 엔브렐 바이오시밀러는 LG화학 제품이 유일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화학은 올해 R&D 부문에 전년도보다 20% 이상 늘어난 1조1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올해 1천400억원 규모를 생명과학 부문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OCI 또한 신사업으로 바이오·제약 사업을 선택했다.

OCI는 이달 부광약품과 50대50으로 바이오·제약 조인트벤처(JV)를 설립했다. OCI와 부광약품은 앞으로 매년 100억원 이상을 신약 개발 등을 위해 공동 투자할 계획이다.

GS칼텍스 또한 비정유 부문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가운데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케미칼 분야에 주목했다.

GS칼텍스는 지난 2016년 여수 제2공장에 1만5천㎡ 규모의 바이오부탄올 시범공장 건설에 착수해 올해 가동에 들어갔다. 약 500억원이 투입된 본 공장은 연간 400만톤의 바이오부탄올을 생산할 예정이다. 바이오부탄올은 미래 고갈될 석유 등 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이들 정유·화학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업황 호조 등에 힘입어 축적해둔 내부 자금 여력도 양호한 것으로 분석된다. LG화학의 올해 1분기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조9천166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지주회사 SK의 1분기 현금성자산은 약 8조원, GS칼텍스는 약 1조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증권사 에너지분야 연구원은 "현재 미국 화학기업들이 에탄크래커(ECC)를 대규모 증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국내 화학기업들은 공급 과잉 우려 때문에 마음놓고 공장을 증설할 수 없어 투자 대안으로 바이오 부문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부문의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가운데 투자 여력도 충분하다"며 "업계에서 오는 2020년까지 글로벌 화학제품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화학기업들이 잉여현금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M&A 수요도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m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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