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그림자규제를 없애겠다던 금융감독원이 도리어 과도한 행정지도 등으로 금융회사를 압박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윤석헌 원장이 소비자보호를 내세워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며 불만이 극에 달했고, 정치권도 금감원의 직권남용을 지적하고 나섰다.

삼성생명이 금감원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구제 지시를 거부하고 소송전에 나설 채비를 갖춘 가운데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무리한 행정지도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017년 말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혁신방안을 통해 창구규제 등 이른바 그림자규제 관행을 폐지하고 행정지도 근거를 명확히 하겠다고 발표지만, 오히려 비공식적인 감독과 통제로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림자규제란 법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일정 행위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지침을 뜻한다. 통상 공문을 통한 행정지도, 구두지시의 창구지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즉시연금 미지급 논란은 대표적인 행정지도 사례다.

금감원은 보험업계 전체에 삼성생명의 연금 과소지급에 대한 분조위 결정을 참고하라는 내용의 안내 공문을 보냈다. 삼성생명과 비슷한 유형의 즉시연금 가입자 모두에게 일괄 적용해 미지급금을 돌려주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생명보험사들은 이사회를 통해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기 위해선 감독 규정이나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금감원에 관련 문서를 요청했지만, 금감원은 거부했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명문화된 결정이 온다면 당국과 업계 모두 법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알아서 생각해 결정하라는 식의 압박이 계속되다 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따르지 않으면 보복성 검사 등이 있을 수 있어 경영에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은 법정 최고금리(24%) 안에서 영업하고 있음에도 당국이 행정지도로 20%를 고금리로 규정, 업계를 옥죄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규정을 벗어나 영업을 한 것도 아닌데 금감원이 정한 암묵적 룰에 따르지 않으면 무조건 나쁜 은행이 되는 상황"이라며 "가격 결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구두 압박으로 사실상 그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행정지도를 통해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 경쟁을 자제시키려 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3월 특정 회원에게 과도한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는 건전한 영업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며 유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자발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행정지도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지만, 업계는 자율개선이 아닌 강요나 불이익으로 연결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은행권에 대한 대출금리 모범규준 개정 주문도 마찬가지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가산금리 체계를 은행 측에서 자율적으로 개선해오라 하지만 감독 당국의 메시지인데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며 "행정지도가 내려오면 금감원이 원하는 수준을 찾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금감원의 '직권남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감원이 법적 근거가 없는 혁신과제를 발표해 경영을 간섭하는 관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도 "금감원이 그림자규제 형태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을 통해 의무를 부과하는 행태는 직권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지적들을 깊이 새기겠다"면서도 "금감원은 감독 책임이 있으므로 모범규준 등을 통해 선제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금융산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라서 규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금융산업이 무너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는 것이 금감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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