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번달 초 주요 외신은 '세계 최고(最古) 은행'인 이탈리아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은행'(BMPS)을 비중있게 다뤘다. 유럽연합(EU)이 이탈리아 정부가 BMPS 구제를 위한 지원금 54억유로를 투입할 수 있도록 베일아웃(bail-out)을 허용해서다. EU가 시장 원리도 아닌 관치금융의 논리를 허용한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국내 금융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U는 이탈리아 정부의 구제금융을 승인하면서 '베일인'(bail-in) 규정을 무력화시켰다는 비난을 샀다. 베일인 규정은 대형 은행 등 금융기관을 구제할 때 주주는 물론 채권단 등 민간 투자자에게 손실을 먼저 부담시키는 원칙을 일컫는다. 대형금융기관의 경우 손실은 납세자 등 공공부문이 전담하고 이익은 주주와 금융권 종사들이 독점한다는 문제의식에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됐다.

EU가 비난여론을 무릅쓰고 베일아웃(bail-out)을 허용한 것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현실론을 인정한 결과로 풀이됐다.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이 국가경제에 너무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이탈리아 정부와 EU는 구제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금융기관 투자자와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 규정을 무력화시켰다는 비난여론을 누그러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지나친 관치라고 몰아세우는 국내 금융기관과 언론 등이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국내 은행들 대부분도 외환위기 이후 대마불사를 바탕으로 구제금융 등을 통해 살아 남은 뒤 과점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최근 저서를 통해 "국내 은행은 엄격한 진입규제로 새로 진입할 경쟁자조차 없는 과점을 국가로부터 보장받은 사실상 공기업이다"고 지적했다. 변실장은 "은행이 (과점체제를 통해 공기업의 지위를 누리면서도) 기업대출을 늘리기보다는 위험부담이 적은 담보 중심의 가계대출을 늘리는 등 '전당포 영업'에 안주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실제 외환위기 전인 1997년 26개에 이르던 은행은 2012년 기준으로 12개로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기업대출 비중도 1998년 72% 수준에서 2015년 56%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특히 기업대출중 중소기업 대출은 2006년 91.4% 수준에서 2015년 77.3% 수준까지 감소했다.

은행권 경영진들은 관치에 대한 비난 여론을 방패막이로 담보위주의 '전당포 영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주가를 높이는 데도 나름의 성과를 보여줬다. 지점과 고용을 줄여 경영지표를 호전시키는 수완도 보여줬다.

여론은 은행이 관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경영지표가 호전됐다며 칭찬하고 있지만 그 뒤에 숨은 특정 인맥들의 은행 사유화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두 달이 넘었지만 금융당국은 사실상 수뇌부 공백 상태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17일 열릴 예정이고 금융감독원장 후보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이 하루바삐 진용을 갖춰 사실상 공공기관인 은행의 사유화를 저지하는 등 제대로 된 관치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관치는 국민경제를 생각하는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어야 한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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