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격화는 곧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대한민국의 위협 요인이다.

미·중 무역 분쟁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 국가 1, 2위인 나라의 무역 분쟁은 직간접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이유 역시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여기에다 청년 실업과 신규 고용 문제는 이미 재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 문제는 고용과 관련한 지표는 앞으로 나아질 기미조차 없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주변 환경만 보면 현시점에서 기준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최근 한은의 통화정책의 방향은 금리 인상 쪽이다. 국내 경제 변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기보단 미국의 금리 인상 스케쥴을 따라가는 소위 `안전빵' 통화정책을 구사하려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금리 인상 스탠스를 비판하고 싶진 않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로 자본 유출이 빠르게 일어나는 일 또한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은의 스탠스가 이랬다저랬다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기준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선 실제로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금통위원의 소수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한은 총재는 금통위 기자회견장에서 소수의견이 금통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며 금리 인상 시그널을 애써 차단하려 했다. 주식시장에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은 오히려 유입되고 있다며 한미 금리 차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애썼다.

그런데 불과 며칠이 지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출석해선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물가가 타깃 수준인 2%에 수렴하면 금리를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시장은 금리 인상 시그널로 받아들였고 실제 시장금리도 요동을 쳤다.

며칠 간격으로 중앙은행의 수장인 총재가 엄중한 금리 문제로 시장에다 이중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재의 발언을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듯 한은은 관리물가를 제외하면 이미 물가가 2%를 넘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례적이다.

관리물가란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을 대상으로 추정·편제한 가격지수로 광범위하게 대상품목을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물가는 정부가 관리하지 않으면 때에 따라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물가 변동성은 정부의 관리 의지 따라 적지 않게 달라진다.

그런데도 한은은 관리물가를 제외하면 이미 물가가 2%를 넘어섰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무슨 이유로 관리물가를 제외한 채 이러한 보고서를 내놓았는지는 이렇다 할 설명도 없다. 우리 국민의 생활경제는 정부가 관리하는 물가 품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 데도 말이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총재가 물가가 2% 넘으면 금리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소비자물가는 1.5% 주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자 금리 인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한은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관리물가를 언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엔 선진국 경기가 둔화하더라도 우리 수출은 큰 영향을 안 받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동태패널 모형을 근거로 제시했다. 물가는 이미 금리를 올려야 할 만큼 올랐고, 무역 분쟁으로 글로벌 경기가 둔화 되도 수출은 큰 영향이 없다는 보고서를 내면서까지 금리 인상을 지지하고 싶은 모양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나 자본 유출 등의 변수는 우리 정부나 한은이 관리하기 힘든 영역이다. 결국,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 금리 결정 문제로 시장에 혼선을 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시장 혼선이 의도된 중앙은행의 정책이라면 꼭 그 효과를 봤으면 좋겠다. (정책금융부 부장)

s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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