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생명보험사 즉시연금 미지급금 문제를 놓고 금융감독원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소비자 보호 최우선 원칙에 따라 반드시 일괄구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법령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조치라는 회의론이 맞서면서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분리 논쟁의 '축소판'에 빗대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달 26일 삼성생명이 이사회에서 4천3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 권고안을 사실상 거부한 이후 분명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내부에서 보험 부문과 소비자보호 부문 임원 간 견해차가 다소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금감원에서 통일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의견조율에 나설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보험 감독·검사·감리 등을 담당하는 보험 부문과 분쟁조정·보험사기·불법금융대응단 등이 속한 금융소비자보호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보험 부문은 설인배 부원장보가, 소비자보호 부문은 정성웅 부원장보가 각각 담당한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분쟁 건에 대해 일괄지급 결론을 내린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와 분쟁조정국은 소비자보호 부문 관할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에 대한 검사나 별도 조치를 판단하는 건 보험 부문이다.

분조위는 지난해 11월 삼성생명의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한 강모 씨가 최저보증이율로 계산한 최소보장 금액을 지급해달라고 제기한 민원에 대해 가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연금액이 계약보다 적고, 만기 환급금을 맞춰 주려고 매월 준비금을 뗀다는 설명도 약관에 없었던 만큼 덜 준 연금액과 이자를 모두 돌려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또 민원 1건에 대한 조정 결정을 즉시연금 가입자 5만5천 명에 확대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금액으로 확산하면 약 4천300억 원에 달한다.

분조위는 다수의 동일유형 피해자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일괄구제제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금융회사와의 관계에 있어 소비자들의 힘이 약한 만큼 금감원이 나서 소비자보호를 위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감독 부문의 입장은 다르다.

아직 법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일괄구제를 강요하는 건 무리한 행정권고라는 주장이다. 보험사가 분조위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검사 등의 조치에 나설 수 없으며, 자칫 보복성으로 보일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분조위 결정이 다소 지나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즉시연금 논란은 보험약관 부실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건데 무조건 소비자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금융감독의 최우선 순위가 금융소비자 보호인 것처럼 비칠 수 있고, 소비자보호로 금융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가 되면 결국 그 피해는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부작용을 낳는다.

금감원 내부에선 즉시연금 논란이 '감독'과 '소비자보호' 기능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사안으로 보고 금소원 신설 시 이 같은 이해 상충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떼어내 금소원이라는 별도기구를 만드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 금감원 임원은 "즉시연금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맡은 업무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데 금소원 분리로 수장이 한 명 더 생긴다면 매번 부딪힐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며 "즉시연금 사태는 금소원 분리의 축소판으로 의미하는 게 많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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