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한 시중은행의 임원이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의 사업성에 대한 보고서를 행장에게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장기간 지속적인 자본 투입이 필요한 인터넷전문은행에 투자하기보단 기존 비대면채널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를 읽은 행장은 아무 말 없이 '재검토'를 지시했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현장 점검에 나서 직접 은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직후의 일이다.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검토하는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인터넷전문은행의 사업성을 고려해 저마다 비대면채널을 구축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또 다른 인터넷전문은행을 모른척하기엔 눈치가 보여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전문은행 신규 진출을 고려하는 금융회사로는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 키움증권, 교보생명 등이 손꼽힌다

이들 대다수는 현재로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업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는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내놓은 상태다.

현재로썬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인가 방침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데다, 컨소시엄을 구성할 사업자와의 구체적인 논의도 진행된 게 없어서다.

그간 인터넷전문은행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금융권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시장의 경쟁을 촉발한 것은 맞지만, 기존 사업자에게 위협을 가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케이뱅크나 카카오뱅크는 해외송금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낮췄고, 은행들이 할 수 있는데도 해오지 않던 주말 대출 영업에 나섰다.

금융 서비스를 더 싸고 손쉽게 이용하도록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는 아니었다.

카카오뱅크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기존의 서비스를 다르게 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기존에 없었던 서비스를 비즈니스로 선보이겠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한 말이다.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직접 촉구하면서 자본확충에 난항을 거듭하던 인터넷전문은행은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돈을 채울 길이 열렸지 수익을 낼 수 있는 보장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이미 기존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은행들은 그 대항마로 경쟁력 있는 비대면 플랫폼을 출시했다.

신한은행은 '쏠(SOL)', KEB하나은행은 '핀크(Finnq)'를 선보였고, 기업은행과 농협은행은 각각 '아이원뱅크(i-ONE뱅크)'와 '올원뱅크(All-One뱅크)' 재구축을 추진 중이다.

은행 입장에선 인터넷전문은행에 새삼 뛰어들어 대규모 자본을 허투루 쓸 이유가 없는 셈이다.

함께할 ICT 기업이 제한적이란 점도 문제다.

네이버는 금융당국과 금융권 모두가 러브콜을 보내는 인터넷전문은행 잠재 사업자다.

하지만 정작 네이버는 국내 은행산업에 관심이 없다. 기존 페이 사업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수익이 난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담은 특례법들은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제외한 비금융주력자만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정하고 있다.

7조1천억 원의 자산을 가진 네이버는 이해진 의장이 총수로 지정돼 있으며 조만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 원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전문은행 살리기에 사활을 건 금융위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ICT 기업은 예외로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네이버의 참여는 요원하다.

그 외 거론되는 ICT 기업은 SK텔레콤과 인터파크, 그리고 일부 유통계열 기업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앞선 사업자 입찰에 참여했거나, 이미 금융권과 협력을 맺어 인터넷전문은행과 비슷한 서비스를 내놨다. 강력한 ICT 동반자를 찾는 금융회사 입장에서 매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참여를 두고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다.

생산적, 포용적 금융이란 정부 기조에 발맞추기 바쁜 은행에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꼬리표 없는 숙제가 된 셈이다.

한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은 그야말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이야기"라며 "대통령이 직접 나선 금융혁신 과제에 대해 사업성은 물론 정무적인 판단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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