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랫동안 '금과옥조'처럼 지켜왔던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 제한) 원칙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3당은 지난 8일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여야 정치인들이 오랜만이라기보단 처음으로 은산분리 완화 이슈를 두고 하나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법 처리에 대한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역시 우리 사회가 반드시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성숙한 사회다.

다만 은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은 국회가 경제 민주화란 명제를 두고 옳고,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 해석보단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고 있어서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래서 여야의 합의가 수월했다는 시각이다.

여하튼 금융의 미래라고 일컫는 블록체인, 이를 통한 금융혁신을 주도하려면 기술력을 갖춘 IT기업의 은행업 진출이 필요한 데 지금의 법과 제도로는 제약이 따른다.

이를 정비하자는 취지로 정부와 국회가 인터넷은행 특례법을 제정하려는 것이지 누구에게 특혜를 주고자 했다면 아마 여야 합의 처리는 요원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금융혁신을 주도하면 되는 데 왜 굳이 은산분리 완화까지 시도하느냐는 주장도 한다.

백 년 가까이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예대마진)에만 안주해 이제는 한해 몇조 원씩 벌어들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은행들이 금융혁신을 선도한다. 말은 좋지만 이를 기대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더해 특례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존 은행들도 인터넷뱅킹을 하는 데 현재 인터넷은행과 무슨 차별화냐고 얘기도 하고,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할 수 있는 데 은산분리를 완화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한다. 일리 있는 얘기로 반드시 이러한 지적들이 실제로 현실에서 나타나선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우려만 가지고 금융 기술 발전을 등한시한다면 우리나라는 멀찌감치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글로벌 금융혁신의 열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승자를 프랑스로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민중의 딸이자,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다르크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이미지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경제 학자들은 백년전쟁을 영국의 완승으로 본다. 최소한 경제적으론 말이다.

영국은 백년전쟁 패전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근대 금융과 제조업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사회·경제 변혁을 이뤄냈다.

프랑스는 백년전쟁 승리 이후에도 한참을 중세봉건 시대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랑스가 전쟁 승리에 취해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 찬란했던 유산에만 얽매인 탓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을 가지고 있다. 모두 제조업 기반이다. 삼성전자가 그렇고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모두 글로벌 기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한민국 경제를 이들 몇몇 대기업에 의존해 지탱할 순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100년 이상 가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시대 흐름에 따라 기업도 카멜레온처럼 변해야 정글과 같은 세계 경제의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기업들도 등장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고 있다. 6.25 전쟁 이후 척박한 대한민국 땅에서도 지금과 같은 일류 대기업이 등장했듯이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굴뚝 없는 굴지의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기업도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금융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세계적 회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나. 금융은 자원이 없어도 사람과 기술로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이다. 그래서 금융은 대한민국과 잘 어울릴 법한 산업이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도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 돼야 한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이 앞으로 논쟁이 아닌 금융혁신의 촉매가 되길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책금융부 부장)

s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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