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취임 100일을 앞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내부혁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즉시연금 미지급금의 일괄구제 등에 있어 금융회사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려면 내부 기강부터 다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윤 원장은 지난주 임원회의에서 "시장과 업계에 준엄하기 위해서 금감원 내부혁신도 필요하다는 외부 지적이 있었다"며 "이러한 지적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주 윤 원장이 여름휴가와 해외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번진 즉시연금 논란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금융시장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려면 금감원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은 없는지 뒤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전임 원장이 채용비리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은행권 채용비리 검사에 나간 검사역들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조롱을 들어야 했던 과거 아픈 기억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외부에만 근엄한 모습을 보여왔다면 앞으로는 이러한 냉정함을 조직에도 드러내겠다는 의미로 오는 15일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윤 원장은 조직 쇄신을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현재 '경영혁신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인력의 효율화와 조직문화 개선방안을 마련해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할 예정으로 윤 원장의 이 같은 의지가 쇄신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윤 원장은 금감원 조직을 가다듬어 하반기부터 금융개혁을 본격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윤 원장은 최흥식·김기식 전임 두 원장이 도덕적 문제로 낙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직후 수장을 맡아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금융개혁에 대한 임무가 막중한 만큼 지난 5월 8일 취임 일성으로 '금융감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밝힌 뒤에도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업무 파악에 매달리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윤 원장은 지난달에서야 금융개혁 방안을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금융회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종합검사제도 부활 등 대대적인 감독과 검사 강화를 선언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했고 소비자들이 피해를 봤기 때문에 바로 잡기 위해선 감독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정부에서 금융사의 자율을 강조하던 감독 기조를 뒤집는 발언으로, 금융회사들은 윤 원장의 선전포고에 바짝 긴장했다.

실제로 이 같은 소신은 현안을 풀어가는 데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4월 유령주식 배당사고를 일으킨 삼성증권은 6개월의 신규 투자중개업 영업 일부 정지와 과태료 부과 등 중징계를 받았다. 3개월 직무정지가 내려진 구성훈 사장은 결국 취임 4개월 만에 사퇴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을 처리함에서도 윤 원장은 증권선물위원회의 감리 조치안 보완 요구에도 고의성이 있었다는 원안을 끝까지 고수했다.

윤 원장은 그 무엇보다 '소비자보호' 원칙을 강조했다.

일부 은행의 대출금리 부당 부과 문제를 전 은행권으로 확산시켜 전수 조사하는가 하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금리 실태를 낱낱이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한화생명이 분쟁조정위원회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 권고를 거부한 가운데 금감원이 민원인 소송지원제도를 통해 적극 지원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소비자보호만을 내세워 근거가 부족한 부분까지도 금융회사를 압박, 자율경영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즉시연금 문제가 촉발되며 교수 출신의 원장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문제에 빠졌다"며 "기대만큼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도 많아 윤 원장이 업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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