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터키 리라화의 가치 폭락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두려움도 증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터키가 전형적으로 외화부채를 통해 성장세를 끌어올린 국가로, 재정 여건 악화와 부적절한 경제 정책 등으로 더욱 심각한 상황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13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JP모건자산운용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가 스스로 '퍼펙트 스톰'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악화한 재정 상황과 흔들리는 투자자 심리, 부적절한 경제 정책, 미국의 관세 위협 등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JP모건은 "터키 자산은 심각한 압력 속에 있다"며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터키 비중은 작지만, 투자자들은 터키가 다른 시장, 특히 유럽에 문제를 일으킬 것을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 외화부채로 쌓아올린 성장률

리라화 폭락이 촉발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 등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터키 경제의 기반은 이미 균열이 확산했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터키는 최근 몇 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 중 하나였다. 작년에는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을 능가했고, 올해도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7.22% 증가했다.

이런 가파른 성장세는 외화부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중앙은행이 경제 부양을 위해 돈을 쏟아 붓는 동안 터키의 은행과 기업들은 미국 달러화 표시 부채를 늘렸다.

소비와 지출을 촉진하는 부채 차입으로 터키 경제는 재정과 경상수지 모두 적자에 빠지게 됐다. 재정적자는 정부 지출이 수입을 초과할 때 발생하고, 경상적자는 한 국가가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량보다 많이 사들인다는 의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터키의 외화부채는 현재 GDP의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쌍둥이 적자와 대규모 외화부채를 떠안은 국가가 터키뿐만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를 보이는 데다 외화부채는 GDP의 30%가량이다.

이와 관련, 크레디트사이트의 리처드 브릭스 애널리스트는 "인도네시아와 달리 터키는 상황이 악화할 때 경제를 구하기 위한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지 않다"며 "보유액은 리라 이외 통화 표시의 단기 부채 1천810억달러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다"고 분석했다.

그는 "게다가 터키 외환의 대부분은 은행권이 보유하고 있어 고객이 자금을 인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리라 가치가 계속 떨어지더라도 터키 정부가 통화를 사들일 능력이 없다는 얘기다. 터키의 대규모 부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IMF 구제금융 요청 등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CNBC는 관측했다.

◇ 존재감 잃은 중앙은행에 투자 심리도 무너져

다수의 전문가는 터키중앙은행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었다면 터키가 지금과 같은 곤경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터키 경제는 지난 7월 물가 상승률이 16%를 기록할 정도로 과열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물가 목표치인 5%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이런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고,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터키 자산을 사기 위해 리라화를 필요로 하는 만큼, 금리인상은 통화 가치 하락을 막아주는 셈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그런데도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저금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에 대한 그의 과도한 영향력으로, 투자자의 신뢰도 떨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브릭스 애널리스트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보다는 현재의 외환위기를 연장하는 저금리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며 "그의 존재와 시장의 신뢰도 저하는 위험한 결합"이라고 설명했다.

SC은행의 에릭 로버트센 글로벌 헤드는 "금리인상이 아니라면 터키가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선택지가 거의 없다"며 "터키의 은행권 외환 스와프 거래 제한은 자본 통제가 아니고, 단지 '베이비 스텝'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준금리 정책은 일종의 방어선이고, 그들이 해야하는 것은 통화가 본격적인 '자본 비행'으로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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