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성과급 22억원을 받는 사람이 나오는 곳이 증권가죠. 하지만 그동안의 성과급이 누적되고, 이연돼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증권사 반기보고서에서 고액의 성과급이 주목을 받지만 증권맨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오너보다 많은 한국투자증권 차장의 성과급 21억1천758만원의 구성을 보면 지난 2014년부터 2017년 4년간의 성과급 이연 지급분이 쌓여있다.

성과급 분할지급 과정에서 돈을 떼이는 경우도 부지기수여서 고액의 성과급이 이직이나 사표를 낼 수 없는 족쇄가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증권사는 내부 규정과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총 4회에 나눠서 지급한다.

지난해 9월부터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통해 증권사의 고액 성과급이 집중되지 않도록 집행임원과 금융투자업무 담당자는 성과급을 3년 이상에 걸쳐 이연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이에 증권사들은 성과를 낸 첫해에는 최대 60%를 주고, 나머지는 몇 년에 나눠서 성과급을 준다. 이후 손실을 냈을 경우에는 차감하거나 환수하기도 한다.

시행령은 금융회사의 과도한 성과급 잔치를 막는 차원에서 지난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렇게 나눠서 지급되는 성과급은 직원이 사표를 내거나 이직할 경우에는 제대로 챙겨 받기 어려워진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성과를 내더라도 회사를 옮기면 이전 회사의 성과급을 챙겨 받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한 한 증권사의 직원 A씨. 그는 사직과 동시에 수천만원의 성과급을 떼였다.

사직서를 받은 증권사 인사 담당자는 "회사에서 계약해지하면 모두 주게 돼 있지만 본인이 사표를 내면 밀린 성과급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자문을 요청해도 돌아온 답변은 통상임금을 제외한 임금은 회사 내규에 따른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회사에 기여한 결과로 성과급을 지급받았는데 사직과 동시에 내규를 핑계로 회사가 지급을 하지 않았다"며 "성과급이 쌓여있는 직원들은 사표를 내고 싶어도 참고 다녀야 해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퇴사와 함께 성과급을 챙겨받을 방법은 없는 걸까.

한 증권사의 직원들은 증권사가 프랍·헤지펀드 운용팀을 자회사로 분할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자회사가 생기면 퇴사와 함께 재입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성과급을 받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어서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를 옮길 경우 이전 회사에서 비용산정 등을 이유로 성과급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다"며 "4년 분할지급하라는 규정이 증권사 입장에서는 반가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의 연봉 구조가 성과급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도 공식적인 성과급 지급 규정이 없는 경우도 많고, 주는 대로 받으라는 식이거나 일부 증권사 직원은 이직하면서 성과급을 떼이는 경우도 있다"며 "성과급 분할지급이 직원에 대한 증권사의 갑질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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