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규제 완화는 절절포, 절대로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

포기를 몰랐던 임종룡 당시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2015년 2월 열린 범금용 대토론회에서 금융당국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건전성을 내세워 지나치게 금융회사를 규제하는 것은 검사ㆍ제재권을 가진 금융당국의 관행이라는 지적이었다.

작심한듯 말을 내뱉은 지 일주일 만에, 그는 차기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임 위원장은 2년 4개월의 임기는 누구보다 바빴다.

그의 절절포를 기억하는 금융권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임기 초반 최대 과제는 '금융개혁'이었다.

자본시장 개혁 추진, 퇴직연금시장 활성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핀테크 산업 활성화, 기술금융 제도 개선, 빅데이터 활성화 등 금융 소비자를 위한 정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금융당국이 일일이 금융사를 방문해 직접 민원을 듣고 답을 말해주는 현장점검반 운영도 그의 속도 경영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구조조정이었다.

사실 외환위기가 들이닥친 1997년 재정경제부 기업구조조정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을 때도 그는 한결같았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는 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확신 아래 그는 구조조정의 총대를 멨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쉽지 않은 길이기에 비난은 예상했지만, 훨씬 거칠었다.

산업 논리 없이 금융 논리로 한진해운을 정리했다는 비난을 받을 때 임 위원장은 가장 힘들어했다. 구조조정은 '일관성'의 원칙으로 하나의 선택만이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지만, 조선ㆍ해운업을 영위하는 지역은 물론 정치권의 비판은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마지막까지 결론을 알 수 없었던 대우조선 채무조정 과정에서도 그는 연기금과 회사채 투자자, 그리고 대우조선 임직원들에게 합리적인 결정을 호소했다.

지난 5월 대통령 선거가 열린 전날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찾아간 곳은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였다.

그는 자구계획 이행 상황을 점검하며 체질 개선을 위한 임직원의 자구 노력을 당부했다.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그에 대해 후배들은 '워커홀릭'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는 즉시 그다음 과제를 생각하는 그를 후배들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선배'라고 평가한다.

그런 그가 금융위를 떠나면서 후배들에게 남긴 말은 '진심으로 미안하다'였다.

그는 떠나는 마지막 길에 아프리카의 들소 '누우'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했던 그 날도 누우를 이야기했다.

임 위원장은 "금융개혁이라는 험한 여정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최선을 다해줘 고맙다"며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에도 우리 금융을 새로운 초원으로 인도하는 데는 부족함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시장의 힘을 믿으라고 조언했다.

보이지 않는 실체지만 다수의 지혜를 담고 있고 냉정한 선택을 하는 주체가 금융시장이란 뜻에서다.

임 위원장은 "완벽하지 않은 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는 우리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소명"이라며 "시장이라는 커다란 배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평형수 같은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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