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효지 기자 =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대표적 강경론자였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화적 자세로 돌아선 배경에 시장 참가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연일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이 추진하는 새로운 국채 매입 프로그램도 지지하는 뜻을 밝혔다. 그의 입장 선회는 ECB의 개입에 반기를 들어 온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를 더욱 고립시키기도 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10일(현지 시간) 메르켈 총리 진영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위험이 너무 많다고 판단, '사슬 이론'에서 '도미노 이론'으로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사슬 이론은 유로존이 회원국을 고리로 한 사슬로 보고 가장 약한 고리인 그리스가 빠져나가면 사슬이 더 튼튼해진다고 주장한다. 반면 도미노 이론은 그리스가 빠져나가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차례로 넘어지면서 결국 유로존이 붕괴하기 때문에 그리스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독일은 추가로 620억유로(약 89조원)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도미노 이론가들은 그렉시트가 독일 경제와 성장, 고용에 미칠 영향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우려한다.

또 메르켈 총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리스에 3차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일만은 막고자 할 것이라고 슈피겔은 지적했다. 3차 구제금융을 지원하려면 통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독일 의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부정적인 여론을 무릅써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따라서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공적 채권단인 이른바 트로이카의 실사 보고서를 윤색해 그리스가 차기 지원분을 수혈하도록 할 것이라고 슈피겔은 내다봤다.

그리스는 올해 초 승인된 2차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2020년까지 120%로 낮추기로 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가 적자 감축을 밀어붙이면 여론이 나빠져 긴축을 파기하자는 시리자(급진좌파연합)에 정권이 넘어갈 수 있고 극심한 불경기인 그리스 경제를 더 해칠 수도 있어서다.

이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는 2차 구제금융을 수정해 그리스가 올가을에 차기 지원분으로 더 많은 자금을 수혈하도록 배려할 수 있다. 2차 구제금융 수정에는 독일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2차 구제금융이 끝난 2014년에 그리스에 3차 구제금융 필요성이 판가름나겠지만 설사 3차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해도 독일 총선이 끝난 뒤이므로 독일 정부는 여론을 덜 의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이밖에 그리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서 동부 지중해의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점도 강조하면서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피겔은 다만 메르켈 총리의 노력에도 그리스가 재정 긴축에 실패하면 그렉시트의 위험이 커져 총리마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hj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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