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머니마켓펀드(MMF:money market fund)의 환매를 연기하면서 금융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카드채 사태 이후 15년간 쌓아 올린 MMF 시장의 질서가 하루아침에 흐려졌다. 금융감독원 등 당국은 환매 연기 방침 등에 대해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금융상품은 신용이 생명이다. 특히 단기금융상품은 유동성 확보가 최우선 덕목이다. MMF는 하루 뒤에 되찾아도 환매수수료가 붙지 않아 만기가 따로 없다. 고객은 MMF에 가입한 날의 펀드 기준가와 출금한 날의 펀드 기준가 차액에 따라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게 된다. MMF의 최대 장점은 가입 및 환매가 청구 당일에 즉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런 장점 등을 감안해 기업이나 기관 투자자들 대부분은 여유 자금을 MMF로 운용해 왔다. 대규모 자금의 수시 입출금에 따른 펀드 관리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편입채권에 대해서도 시가평가를 적용하지 않는다. 일정 수준의 괴리율(장부가와 시가와 차이)이 벌어지기 전에는 운용자 입장에서도 시가 변화에 크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런 장점 등을 바탕으로 MMF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CP(기업어음) 등 단기금융상품에 집중투자한다. 고수익상품에 운용하기 때문에 다른 종류보다 돌아오는 수익이 높은 게 보통이다. 다만 특정 상품을 일정 비율 이상 편입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수익률이 높아도 이른바 '몰빵'에 따른 유동성 확보 등의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환매를 연기한 모 자산운용사의 MMF는 카타르국립은행(QNB)의 자산담보기업어음(ABCP)을 전체 펀드의 26%나 편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상품을 펀드의 10% 이상 편입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어긴 사례다. 해당 자산운용사는 특수목적법인(SPC :Special Purpose Company)를 통해 우회하는 방법으로 해당 상품을 대거 편입해 유동성 위기를 자초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독 당국도 편업 운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SPC를 통한 편법 운용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감독 규정 자체를 어기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감독 당국은 자산운용사들이 도미노 형식으로 환매를 연기하자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우정사업본부 등 이른바 MMF 시장의 큰 손을 대상으로 환매 자제를 창구지도 형식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등 당국은 창구 지도 등 사후 조치에 머물 게 아니라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괴리율과 자산 자체의 신용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왜 자산운용사들이 잇따라 환매 연기라는 모럴헤저드에 빠졌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아울러 환매연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도 모색돼야 한다. MMF도 실적배당을 의무화하는 게 대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금도 원칙은 실적배당이지만 영업과 운용은 확정금리형으로 진행되는 게 대부분이다. 개별계약의 문제라는 이유로 당국이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국내 금융시장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금융은 절도와 규율이다. 절도와 규율이 흐트러졌을 때 일하라고 금융기관들이 비싼 분담금까지 내면서 유지하는 게 금융감독원이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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