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번 달 통화정책회의에서 거듭 테이퍼링(자산매입 규모축소) 신호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WSJ은 "시장 참가자 대부분은 ECB가 경제성장세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며 드라기 총재가 20일로 예정된 회의에서 기존 입장을 뒤집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고 전했다.

드라기 총재는 그동안 ECB의 출구전략에 대해 언급을 자제했지만 지난달 27일 포르투갈 연설에서 테이퍼링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으며 입장을 전환했다. 이후 채권시장에선 긴축 우려로 국채 투매 현상이 나타났고 유로화 가치는 크게 뛰었다.

우니크레디트의 마르코 발리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이 이미 자체적으로 포지션을 정한 점을 고려하면 ECB가 기존 입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달갑지 않은 변동성과 혼란만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가 회복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CB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은 3%에 이르러 10년래 가장 빠르게 반등했고 소비자 체감 경기도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은행대출도 견고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현상은 ECB가 이제 긴축정책으로 선회해도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ING의 튜니스 브로센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회복세가 강하게 나타나고 은행대출도 원활해지면서 드라기 총재도 출구전략을 서서히 가동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ECB 고위 관계자들은 매우 신중하게 자산매입 규모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지나치게 빨리 긴축 속도를 올리면 시장에 부정적인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특히 4년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이르게 테이퍼링 신호를 보낸 후 미국 국채금리가 100bp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던 점을 이들은 잊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말 드라기 총재의 테이퍼링 시사 이후 금융시장이 보인 반응 정도라면 ECB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시장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독일 10년물 국채금리는 약 0.3%포인트 상승하며 0.60%에 근접했고 유로화 가치는 1유로당 1.1583달러까지 4센트가량 올랐다.

ING의 카스텐 브르제스키 이코노미스트는 "완전한 패닉은 전혀 반갑지 않지만 약간의 긴축 발작 정도는 괜찮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BNP파리바의 폴 모르티메-리 이코노미스트는 드라기 총재의 발언으로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ECB가 양적완화를 전적으로 중단할 것인지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독일 정부가 내년 말까지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가동되기를 바라는 만큼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WSJ은 드라기 총재가 이번 달 회의에선 테이퍼링에 관해 어떠한 언급도 구체적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더욱 명백한 신호는 8월 말로 예정된 미국 잭슨홀 연설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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