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속에 미국 정부를 움직이려는 월가 금융기관의 물 밑 조정 노력이 활발하다. 다만, 과거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민간 외교단'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지난 주말 베이징에서 중국의 전·현직 관료들은 미국 금융기관의 고위 임원진과 회담을 갖고 양 국간 금융 관계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블랙스톤 등의 임원진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측근 왕치산 부주석을 만날 예정이었다. 이들은 미국 금융기관이 중국 내에서 운영 허가를 받고 서비스를 확대하는 절차를 더욱 투명하게 해달라는 등의 희망 목록을 준비했다.

이달 말 워싱턴에서 열리는 양 국간의 고위급 무역 협상 자리를 마련하는 데도 이들, 특히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게 주요 소식통의 전언이다. 현재 이 협상의 진행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월가의 노력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24일부로 2천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과 중국 정부의 갈등 속에 월가는 주요 조정 역할을 맡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무역 장벽 완화를 고려할 때 월가는 중국의 입장에 선 바 있고, 조지 부시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중국을 통화 조작 국가로 의심할 때 월가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었다.

중국은 최근 방대하면서도 강하게 통제된 금융시장을 천천히 개방했고, 월가 은행권은 중국 기업에 대한 인수 자문 등이 늘어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중국은 (과거와 같이) 다시 한번 미국 정부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정치적 영향력을 월가에 기대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키울 때 월가의 말은 소귀에 경 읽기(falling on deaf ears)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의 거물급 금융권 인사의 좌절이 이어지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감세와 금융 규제 완화를 끌어냈지만, 무역 전쟁은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와튼 경영대학원의 마셸 메이어 명예교수는 "예전에 작동했던 관계와 공식들이 현시점에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무역 전쟁의 악화는 금융시장 개방 속도를 떨어트릴 뿐 아니라 외국 기업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러우지웨이 전 중국 재정부장은 지난 주말 연설을 통해 "무역 전쟁이 계속되면 서방 공급 체인에 대해 주요 부품의 수출이 막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기업을 혼란스럽게 하는 동시에 중국 내 공장을 철수하려는 시도도 빨라질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금융권의 주장에 정치권은 종종 귀를 기울였다"며 "지난 20년간 중국은 글로벌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었고, 애플과 퀄컴, 제너럴모터스를 비롯한 많은 미국 기업의 주요 고객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어서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강경책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같은 월가 친화적인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강경책을 고수하는 것은 그에 따른 부작용이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무역 전쟁으로 피해를 볼 것이란 조짐은 거의 없고, 주식 시장은 계속해서 강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무역 대표부를 지낸 로버트 조엘릭은 "공화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하더라도 무역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아마도 금융시장의 부진 만이 트럼프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Asia Society Policy Institute)의 웬디 커틀러 부회장은 "전통적으로 (월가와 같은)이런 후방 채널은 중국이 류허 부총리와 같은 인사를 고위직에 임명하는 이유 중 하나"라며 "이들은 월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커틀러 부회장은 "현재까지 이런 후방 채널은 미국 정부가 협상 타결로 움직이는 데 별다른 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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