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쉘(shell)을 정하고 펄(Pearl)을 내놓은 후 롤링(Rolling)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겁니다. 웬만한 선수들은 화가 출신이나 증권사 출신이 많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알아듣기 어려운 이 말은 시세조정에 사용되는 은어들이다.

쉘은 주가조작 대상 상장회사를, 펄은 주가부양을 위한 호재성 공시나 뉴스, 롤링은 주식을 사고팔면서 거래량을 늘려 주가를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주가조작에 나서는 선수들이 화가 출신이라는 것도 의아하다.

이 바닥에서 화가란 차트를 그리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가 조작을 하기 전에 언제 시작해서, 거래량은 얼마나 나와야 하고, 언제 주가가 5% 올라야 개미투자자들이 붙는지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한때 주가조작의 세계에 몸담았다가 요즘에는 양지(?)에서 활동중이라는 유사투자자문사의 문찬호(가명) 대표의 이야기에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한국거래소에서 모인 담당자들이 귀를 기울인다.

올해로 세번째 열리는 '불공정거래 규제기간 합동 워크숍' 자리에서 주가조작 유경험자의 노련한 노하우가 펼쳐졌다.

"과거에는 주로 한 사람이 자금을 통제했지만 지금은 점조직으로 돼 있어 서로 알 수도 없습니다. 다단계 조직으로 활동하는 거죠. 요즘 시장에서 핫한 건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위해 주가를 부양하는 경우입니다"

주가 조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상세한 설명이 뒤따른다.

속칭 불공정거래 '꾼'들의 종목 선정 기준은 어떨까.

"회사 선정시 다 똑같아 보여도 시총이 좀 작고, CB나 워런트 등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하루 거래량을 30%만 할 수 있다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주가 조작 세력의 자금 조달 경로도 언급됐다.

최근 모 저축은행이 M&A자금을 많이 대고, 명동 사채업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주로 차명계좌(모찌)를 이용한다고 한다.

"명동은 조그만 보따리 들고 다니는 아줌마들이 2억~3억원씩 들고 다녀요. 저축은행은 금리가 18% 정도지만 명동은 2부, 3부 가도 안하는 건 저축은행이 그나마 담보도 맡길 수 있고, 적어도 규정에서 벗어난 짓은 안하니까"

요즘 주가조작 세력이 선호하는 기업은 바이오기업이라고 했다.

M&A를 하지만 자기 돈이 아니라 사업체도, 돈도 남의 것으로 하니 무자본 M&A다.

전문가를 포섭하기 위해 약물을 이용하고, 접대를 이용해 성폭행 사건에 연루되게 하거나 골프 등 도박에 가담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문 대표는 설명했다.

주가 조작을 통해 수십억원을 움직이는 세력인 만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불공정거래는 꼭 이런 세력이 가담한 방식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신약개발 과정에서 임상결과를 속이거나 미공개 정보를 미리 노출해 주가를 움직이기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에 바이오기업 불공정거래를 분석한 서근희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의 발표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제약회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이 임상에만 대략 10~15년이 걸리고, 신약 성공확률도 1만개 약물 중 1개가 성공하는 정도로 확률이 낮다고 짚었다.

투자자들이 제약·바이오 기업 투자에 앞서 임상의 리스크를 살피고, 임상등록사이트(Clinicaltrials.gov)를 통해 간접 확인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독감치료제로 유명한 타미플루는 1조원 가량 매출이 발생했지만 호주 임상결과 위약군(가짜약군), 타미플루 복용군 두 환자군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함량이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하지만 굳이 이런 결과를 밝히지는 않습니다. 약의 가치가 줄어드니까요. 실패한 결과는 숨기거나 버려 약의 밸류에이션을 높입니다"

대표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기소된 네이처셀의 경우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를 만드는데 임상등록 사이트에서 보면 환자수가 26명 등록돼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걸리는 관절염 치료제를 26명을 기준으로 본 것이 통계학적으로 맞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라젠의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 역시 일부 임상결과에 대한 추가 발표가 없어 임상 3상 결과만 봐서는 약의 밸류에이션을 측정하는데 의문이 들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울남부지검의 기노성 검사도 발표자로 나서 최근 증권범죄 수사사례와 특징 등을 언급했다.

당국자들은 날로 진화하는 증권범죄 기법은 물론 주가조작 꾼으로 금융위까지 오는 사람들의 10%가 재범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거래소가 올해 한계기업, 관리종목 등의 심리를 한 25개 기업 중 상당수가 차세대 핵심 성장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기업이라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혔다.

금융위원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의 MOU가 체결된 만큼 바이오기업 임상 정보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금융감독원은 주가조작 자금조달원으로 지목된 저축은행의 모니터링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남부지검도 가상화폐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등에 주목하고 있다며 기관간 협력를 통한 자본시장 안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거래소는 불공정거래 관련 위치추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바이오기업 임상 단계별 공시를 하도록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증권부 정선영 기자)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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