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최정우 기자 = 한국거래소의 전무후무한 무더기 상장폐지 조치가 법원에서 급제동이 걸리면서 거래소의 무책임한 상장폐지 업무처리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특히 상장폐지 조치와 사후진행 과정에서 한국거래소가 규정대로 집행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외면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금융당국이 직접 업무감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던 11개 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모다와 에프티이앤이, 감마누, 파티게임즈 등 4개사의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인용돼 정리매매가 중단됐다.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가 내린 이들 4개사에 대한 주권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은 본안소송 판결이 확정되거나 거래소의 이의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이 확인될 때까지 정지되며 정리매매도 함께 보류된다.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거래소의 무더기 상장폐지 조치에 대한 반발이 일자, 거래소 측은 규정에 따라 진행된 적절한 절차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거래소의 이런 입장 표명에 업계와 시장의 여론은 더욱 악화하는 분위기다.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라는 기본 이념을 배제한 채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거래소는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의 상장폐지는 법적 다툼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이번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문을 보면 일방적인 무더기 상장폐지 조치에 대한 법원의 비판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별 회생절차와 회계법인 재감사에 대한 소명 등에 대해 법원이 이를 대부분 인정하고 정리매매를 중단하도록 발 빠르게 조치했기 때문이다.

실제 법원은 감마누에 대한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문에서 "감마누가 회생절차를 통해 채무가 확정됨으로써 이 사건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변경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각 회생사건의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법원은 또 "감마누 등은 변제율 100%의 회생계획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회생절차가 특별한 장애 없이 진행돼 회생인가결정이 예정된 날에 이뤄질 수 있다는 채권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파티게임즈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도 법원은 "사건 감사인이 재감사 보고서에서 관련 회사의 2017년 재무제표에 관해 의견거절을 한 데 대해 중대한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절차만 지키면 할 일 다 했다는 거래소의 무책임한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투자자들의 호소를 법원이 수용하고 제동에 나선 것으로 평가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파티게임즈의 경우 법원 인용문을 보면 대주주가 책임 있는 노력을 다했고, 감사인인 회계법인의 실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정리매매 정지 요청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무더기 상장폐지 조치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되는 등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상장폐지와 상장심사 관련 규정 자체를 대대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갑작스러운 무더기 상폐는 투자자 보호를 외면하는 일이 되는 동시에 장기투자 문화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거래소가 무책임하게 전격적인 무더기 상장폐지 조치를 단행할 게 아니라 해외처럼 상장 요건과 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상장 후에도 기업들에 대한 공시 독려 및 감독 강화를 항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상폐 관련 업무를 위임받은 회계법인들의 실사에 대한 적절성 평가도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게 아니라 거래소의 상장과 상장폐지 업무와 관련한 전면적인 감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무더기 상장폐지 이슈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오는 11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정운수 코스닥시장본부장이 등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정 이사장은 주식거래시간 연장 논란 관련 증인으로 채택된 것이지만, 상장폐지 논란과 관련한 질의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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