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최욱 기자 =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직후 국내 은행들에 직접 연락해 대북제재 준수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미 재무부가 우리 금융당국을 거치지 않고 국내 금융회사와 직접 접촉해 의견을 전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각에서는 월권 행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양일간 KDB산업·IBK기업·NH농협·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7곳 은행과 콘퍼런스콜을 열었다.

이들 은행은 미국 현지에 지점을 두고 있는 곳들이다.

당시는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직후였다.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국(TFI)을 중심으로 외교부나 금융당국 등 정부부처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은행에 연락, 북한 관련 회의를 열고 싶다고 요청했다.

각 은행에서는 자금세탁방지, 준법감시 업무 관련 부행장 또는 임원이 참석했다.

컨퍼런스콜은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 정도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는 국내 은행이 추진하는 대북 관련 사업 현황을 묻고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 사항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이슈를 집중적으로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은행 참석자들은 미 재무부 측에 진행 중인 사업은 대북제대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미 재무부가 정부부처를 거치지 않고 국내 금융기관에 직접 접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미 재무부의 회의 요청이 자칫 '금융당국 패싱'이나 월권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통상 다른 나라 행정부 간 논의가 진행될 때는 외교부 등 정부부처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컨퍼런스콜의 주요 내용이 국내 은행의 현지 영업 감독이 아닌 외교적 이슈를 담고 있어 금융당국이 자체적인 판단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 재무부와 국내 은행 간 대북제재 관련 회의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야당 의원들은 윤석헌 금감원장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하며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장을 밝혀줄 것을 촉구했다.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은 "(이번 회의는) 미국의 심각한 경고성 메시지로 보이며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제재를 가하겠다는 메시지가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해 우리 금융계에 커다란 사태가 초래되지 않도록 잘 지도·감독해 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당 성일종 의원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금융감독당국 수장은 대비책을 갖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국가는 위험을 제거하는 게 중요한데 사전에 조치를 안 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원장은 "이달 10일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공동으로 은행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과 미국 독자 제재 준수를 당부한 적은 있다"며 "이번 회의에 대해서는 특별히 조치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금융당국도 우선 외교부 등을 통해 이번 사안의 배경을 파악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반적인 업무 처리와 방식이 달랐던데다 국방, 외교적인 문제라 외교부 등 정부부처를 통해 사안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며 "외교적인 이슈가 담겨 있는 문제라 섣불리 당국이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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