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이탈리아가 다음 금융위기의 '진앙지(Epicenter)'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역사가 맞는다면 금융위기는 10년마다 오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 금융위기의 진앙지로 꼽으라면 단연 이탈리아라고 말했다.

과도한 부채, 취약한 은행, 변덕스러운 정부, 무엇보다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가 이탈리아의 문제를 이탈리아에만 국한하기 어려운 이유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는 유로존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로 유럽연합(EU) 국내총생산(GDP)의 11%를 차지한다. 2010년 유로존 부채 위기를 촉발한 그리스와 비교하면 10배나 큰 규모다.

시장은 이탈리아가 전임 정부보다 지출을 3배나 확대한 내년도 예산안을 그대로 추진할 경우 그리스식 재정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국가 부채는 GDP의 131% 정도다.

예산안을 두고 EU와 대치하는 상황, 극단적으로는 유로존 탈퇴 위협까지 고려하면 이탈리아 문제를 단순하게 치부하긴 어려워 보인다.

런던경영대학의 리처드 포르테스 경제학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중앙은행들은 이번에는 구제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는 마지막 금융위기 당시 많은 도구를 다 써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혼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정이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은 오는 15일 EU 집행위원회에 공식 제출된다. 회원국의 예산을 감독할 권한이 있는 EU는 이탈리아가 재정적자 규모를 줄인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는 경우 예산안 승인을 거부할 수 있다.

예산안에는 저소득층에 기본소득 제공, 세금 인하, 연금 수령 연령을 올린 연금 개혁 백지화 등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반유로 정당 동맹의 핵심 공약을 관철하기 위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탈리아의 전임 정부는 내년 재정적자를 GDP의 0.8% 이내로 설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 정부는 이를 2.4%로 올리려 한다"며 "이탈리아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오성운동의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우리의 예산안은 이탈리아가 수년 동안 기다려온 용기 있는 예산안"이라고 자평하며, 한 발짝도 후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U의 선택은 쉽지 않다.

과도한 부채를 양산하는 회원국의 예산안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그렇다고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이탈리아 위험이 유로존 전체로 확산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브뤼셀의 싱크탱크 브뤼겔의 그레고리 클레이스 연구원은 "그들은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피치는 앞서 이탈리아 예산안과 관련해 부정적 보고서를 발표해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탈리아의 국채금리는 현재 유로존 부채 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의 7%보다는 낮은 3.7%를 기록하고 있으나 지난 5월의 1.7%에 비해서는 크게 올랐다.

국채금리가 계속 오를 경우 이탈리아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이탈리아 은행들의 자산 가치가 크게 악화할 위험이 있다. 이는 은행의 건전성 위험을 높여 또 다른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은행들이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에 좀 더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출 접근성이 떨어지면 경기에 미칠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오르면 세금 징수는 더욱 힘들어지고 정부의 재정은 더욱 악화한다. 이는 다시 이탈리아 국채금리를 높여 경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루이지 페데리코 시뇨리니 부총재는 지난주 의회에 출석해 "부채는 이탈리아 불안의 최대 승수"라며 "채권 가치의 변화는 이를 보유한 금융기관은 물론, 개인, 가계,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탈리아와 EU의 갈등이 심화할 경우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 우려도 재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탈리아인들은 여전히 유로존에 잔류하길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클로디오 보르기 이탈리아 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이 예산안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유로존을 벗어난 경제 여건이 이탈리아에 더욱 우호적일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은 주목할만하다.

보르기 위원장은 이탈리아 연립정권의 한 축인 '동맹'의 최고 경제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오성운동의 디 마이오 부총리는 최근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장을 신경 쓰고 있다"라면서도 채권금리와 이탈리아 국민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이탈리아 국민을 선택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EU와 이탈리아의 대치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시사하는 동시에 한동안 이탈리아 상황을 주시해야하는 이유로 보인다.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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