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욱 기자 = 정부의 경제·금융 수장들이 미국 재무부가 국내 은행과 콘퍼런스콜을 열어 대북제재 준수를 요청한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고 잇달아 밝히면서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보여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은행권의 주요 동향을 누구보다 먼저 챙겨야 할 금감원장이 대북제재 관련 이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 재무부와 우리나라 은행이 통화하기 전에 적절한 절차를 거쳐 연락을 받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미 재무부의 테러·금융정보국 담당자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와 관련해 국내 은행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전화통화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은행들은 그런 방침을 잘 알고 있고 앞으로도 충실히 준수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3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가 열렸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콘퍼런스콜과 관련해 "(미 재무부로부터) 당연히 통보받고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경제제재와 관련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 별문제 없이 사전예방적 차원에서 대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경제·금융 수장의 이 같은 발언은 미 재무부와 국내 은행 간 전화통화를 정부 부처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반론이다.

미 재무부가 지난달 20일부터 양일간 KDB산업·IBK기업·NH농협·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7곳 은행과 대북제재 관련 콘퍼런스콜을 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면,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해 논란을 키웠다.

금감원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야당 의원들의 질타도 이어졌다.

특히 윤 원장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김 부총리와 최 위원장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확실히 밝힌 것과 대조를 이뤘다.

당시 오전 국감에서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은 "(이번 회의는) 미국의 심각한 경고성 메시지로 보이며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제재를 가하겠다는 메시지가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해 우리 금융계에 커다란 사태가 초래되지 않도록 잘 지도·감독해 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당 성일종 의원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금융감독당국 수장은 대비책을 갖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국가는 위험을 제거하는 게 중요한데 사전에 조치를 안 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이달 10일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공동으로 은행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과 미국 독자 제재 준수를 당부한 적은 있다"며 "이번 회의에 대해서는 특별히 조치한 것은 없다"고 답변했다.

이후에도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윤 원장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윤 원장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은데 질의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30분간 정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급기야 민병두 정무위원장이 의원들의 양해를 구해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과 급히 내용 파악에 나서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윤 원장은 오후가 돼서야 "금감원이 콘퍼런스콜의 배경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국내 은행의 대북사업 추진 계획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취지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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