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윤교 기자 =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지만, 최고 점수를 받고도 탈락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치는 내달 돼서야 본격적으로 실시될 계획이다.

기재부는 지난 5월 채용비리로 공공기관 최종 면접에서 응시자가 떨어진 것이 밝혀지면 즉각 채용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나, 금감원은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물쭈물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2016년도 금융공학 분야 신입 공채에서 필기시험과 1·2차 면접 합산 점수가 1등이었는데도 탈락한 A씨의 채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를 11월 이후 밟을 예정이다.

당시 공채에서 2등으로 탈락한 B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다음 달 9일로 예정돼 있어 A씨와 B씨에 대해 일괄적으로 구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판결이 나오면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인사윤리위원회를 열어 법원 결정 내용과 정부 가이드라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들을 채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채용비리로 탈락한 응시자는 즉시 채용해야 한다는 기재부의 가이드라인에 비춰볼 때 금감원이 사태 해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5월 '공공기관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공공기관 직원 채용 과정에서 점수 조작 등 비리로 낙방한 응시생에게 다음 단계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으며, 면접 단계에서 피해를 본 사람은 즉시 채용하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공공기관은 기관 이름을 공개하거나 경영 평가에 반영하는 등 제재를 부과한다.

금감원이 해당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현재 공공기관이 아닌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분류돼 규정을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2009년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 보장을 이유로 공공기관에서 제외됐다.

올해 초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지난 1월 "감독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금감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공기관 지정을 유보했다.

이는 현재 피해자 A씨가 강력하게 채용을 희망하고 있는데도 금감원이 채용 여부를 조속히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A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재판부가 '객관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채용절차'였다고 판결했는데도 피해자 구제에 늦장을 부리고 있단 비판도 나온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A씨에게 손해배상금 8천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까지 나온 상황에서 2등이었던 B씨의 재판 결과까지 본 뒤 피해자 구제 여부를 판단한다니, 의사결정 능력 부재가 심각하다"며 "이 전 국장의 항소심에 악영향이 갈까 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냐"고 말했다.

2016년도 채용비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이문종 전 금감원 총무국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30일로 예정돼 있다.

지난 5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이 전 국장이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금융기관의 채용비리 등을 감독하는 금감원으로서는 입장이 더욱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2016년도 금융공학 분야 신입 공채에서 당초 계획에 없던 전 직장 평판(세평) 조회를 A씨 대상으로만 실시해 필기시험과 면접 합산 점수가 가장 높았던 A씨는 탈락했고 점수가 가장 낮았던 C씨가 합격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2부(오성우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A씨가 금감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금감원이 A 씨에게 손해배상금 8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최종 면접 이후에도 추가절차가 남아있었다는 이유로 A 씨의 재채용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감원은 지난 17일 C씨에 대한 합격 취소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ygju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