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일부 시장참가자가 초장기물 국채의 금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시장에서 일컫는 '금리 마사지' 행태다.

23일 서울 채권시장에 따르면 국채 20년물 지표물인 국고02375-3809(18-7)와 30년물 지표물 국고02625-4803(18-2)은 최근 장내 거래 마감 뒤 장외에서 더 낮은 금리에 거래가 이뤄지면서 10년물 대비 스프레드 역전 폭이 확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국고채 30년물(18-2, 검정)과 20년물(18-7, 연두)의 10년물(18-4,빨강) 대비 추이와 스프레드>





A 증권사의 한 채권 딜러는 "특정 증권사의 사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30년물인 18-2의 장내 거래가 2.30%에 마감한 뒤 오후 3시 45분까지 선물 거래에서 별다른 가격 변동이 없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후 특정 증권사가 4시에 장외에서 10억 원 규모의 거래를 2.29%에 체결하면 금융투자협회나 민간평가사 평가하는 18-2의 최종 금리는 2.29%의 거래를 반영해 2.30%보다는 낮아지게 된다.

초장기물을 보유했거나 10년 국채와 초장기물 사이의 스프레드 역전폭 확대에 베팅한 기관이 전체 상장 규모보다 매우 적은 금액의 거래로 초장기물의 금리를 낮춰서 수익을 키울 수 있는 구조다.

일부 시장참가자의 이런 행태에는 제도적 허점이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선물과 장내 국채 시장이 모두 마감한 오후 3시 45분 이후에도 장외 국채 현물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관은 이를 이용해 오후 3시 55분~4시경 체결한 10억~20억 원의 소규모 거래로 민간평가사와 금융투자협회의 최종호가 수익률에 자사에 유리한 가격을 반영시킨다.

B 증권사의 한 채권 딜러는 "선물 시장이 끝난 뒤 현물 종가는 오후 4시에 끝난다"며 "(이 시차가) 적은 수량으로도 종가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시장은 현물 거래가 먼저 끝나고 시장참가자들이 선물 시장에서 가격을 조정한다"며 "채권시장은 반대로 선물 거래 조정이나 포지션의 수정을 현물 시장에서 하면서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금리 왜곡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며 "제도를 바꾸면 이런 행태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의 마감 가격의 공시성을 인정하는 방향이 좋다"면서도 "장외거래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금융상품투자지침2'(MiFID II)를 도입해 스크린(전자거래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 채권시장도 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장기물은 실수요자인 보험사가 국채를 장기보유하므로 유통 물량이 적고, 이에 따라 장외거래로 금리를 유도하기가 쉽다.

연합인포맥스 채권발행정보(화면번호 4220)에 따르면 실제로 18-7종목은 상장 잔액이 9천700억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장기보유 물량이 많은 보험·기금이 6천637억 원의 순매수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유통 물량은 상장 잔액에서 보험·기금의 보유량을 뺀 3천억 원가량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A 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일부 시장참가자들이 발행량이 작은 특정 종목을 매집해 평가이익을 낸다"고 말했다.

장외거래로 지표물인 18-7의 금리를 낮추면 다른 20년 비지표물과 30년물 금리까지 이에 영향을 받으면서 1bp의 금리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평가액은 크게 불어난다.

그는 "30년 발행물의 규모는 비지표물 포함 67조 원 수준"이라며 "1bp당 채권 평가손익 변동이 1천350억 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20년물과 50년물도 (30년물 영향에) 같이 반응하는 것을 고려하면 금리 1bp의 움직임에 평가손익이 수천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시장참가자들은 '금리 마사지' 현상이 관행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C 증권사의 한 채권 딜러는 "지금 상황이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나서서 정상화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D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일부 시장참가자가 의도적으로 가격을 높이는 행위를 정상적인 가격 메커니즘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A 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지표물은 장내 마감가를 종가로 삼아 장내 가격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것이 채권시장의 선진화"라고 강조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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