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번 국정감사에서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일자리 세습 문제다. 서울교통공사와 강원랜드 등의 채용과정에서 벌어진 직원 친인척들의 무더기 입사 사례가 국감에서 이슈화되면서 청년 취업준비생들은 심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그에 따라 각종 취업지표가 바닥을 찍는 상황에서 드러난 부적절한 채용 사례여서 더욱 실망스럽다. 이러한 채용 비리는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했다는 것이 국감에서 드러났다.

심지어 노사 단체협약에 일자리를 대물림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는 기업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정년퇴직자 자녀를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한 기업은 11곳이었고 노동조합원 자녀를 우선·특별채용하는 기업도 3곳이나 됐다. 신입사원 공채시 자녀 우선 채용을 명시한 기업도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와 롯데정밀화학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고용대물림에 앞장선 것으로 드러났고, 현대로템과 성동조선해양, 금호타이어 등도 관행적으로 고용 세습을 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봉건시대에나 있었던 음서제도가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는 것이다.

채용 비리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질 좋은 일자리에서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입사하기 힘들다 보니 청탁이 오가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욕심이 자녀나 친인척에게 특혜로 이어지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작년에 국내 은행들의 채용비리 행태가 드러나면서 취준생들의 분노를 산 데 이어 올해도 다양한 취업현장에서 적잖은 비리가 발견됨에 따라 이제 투명한 채용절차를 담보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용비리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제는 논란조차 되지 않는 재벌의 경영 세습 문제가 그렇고,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 등이 그렇다. 국내 최고의 과학인재들이 모였다는 과학기술대에서 한 교수가 자기 학과에 편입한 아들에게 최상위 학점은 물론 장학금까지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강남 대치동 한복판에 있는 숙명여고에선 한 교사가 자신의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남은 어떻든 내 자식과 가족만 성공하면 된다는 그릇된 사고가 교육현장에서부터 채용현장까지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만인 평등의 사회에서 신분제 사회로 역행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이쯤 되면 음서제도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고려ㆍ조선시대에 썼던 상피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교육현장에선 이미 고교 상피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채용 현장에서도 상피제를 제도적으로 도입해야 부정취업 논란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산업증권부장)

jang73@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