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예산안을 둘러싼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의 대립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지만 갈등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3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에 내년 예산안을 수정하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의 예산안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이탈리아는 당초 예산안을 고수해야 한다"며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드러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이탈리아가 금융시장 혼란을 무릅쓰고 EU에 강경한 자세로 임하는 배경에는 내년 5월 예정된 유럽 의회 선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는 극우 '동맹'과 좌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정권을 잡고 있다.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고 지난 3월 총선에서 약진해 여당의 자리를 손에 넣었다.

신문은 '동맹'을 이끄는 살비니 부총리가 야심가로 이미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이달 이탈리아 매체 레푸블리카에 EU 집행위원장 자리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이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실소했지만, 주변에서는 진심으로 보고 있다.

예산안 초안을 EU가 반려한 것도 그에겐 오히려 득일 수 있다. 예산안 수정을 둘러싼 EU와의 협의는 곧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끌어 유럽 의회 선거일까지 대(對)EU 강경책을 이어가면 '강대한 EU에 맞선다'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

이에 따라 5월 유럽 선거에서 압승하고 내년 임기 만료를 맞는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차차기를 노리는 노선을 밟을 것이라는 게 니혼게이자이의 분석이다.

이탈리아의 분방한 행동에 금융시장에서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 의원 대부분은 국채수익률이 급등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자금경색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내년 재정은 다소 방만하지만 2020년 이후로는 긴축에 나서는 등 타협안을 제시하면 EU도, 금융시장도 침묵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는 리스크를 지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이탈리아의 경우 금융은 밀라노, 정치는 로마라는 역할 분담이 있어 정치인들이 자금 흐름에 둔감하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반응을 잘못 읽으면 남유럽 위기가 재연할 가능성이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탈리아와 EU와의 갈등이 내년 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고, 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지면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브렉시트가 원활하게 이뤄질지 불투명한 가운데 이탈리아 불안마저 겹치면 유럽 경기는 위축될 것이 뻔하다.

신문은 ECB가 12월 양적완화 중단 방침을 바꾸진 않겠지만 내년 9월로 예상되는 금리 인상 시기는 늦춰지리라고 내다봤다.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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