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주정부가 전자상거래 업체에 대해 소비세를 징수하는 것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매장과 물류시설 등 물리적인 거점이 없으면 전자상거래 회사에 세금 납부를 강제할 수 없었다. 주심 판사는 "물리적인 거점을 요구하는 룰은 주의 장기적인 번영을 제한하고 소매업자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해왔다"며 "온라인 판매가 보급된 시대에 걸맞은 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이번 판결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는 '디지털 과세'와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는 판결이기에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소비세는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가 관할하고 있으며 1992년 미국 대법원은 'Quill Corp' 판결을 통해 "소매업자가 어느 특정 주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설령 해당 소매업자가 같은 주의 소비자들에게 우편이나 인터넷을 통해 물품을 판매하더라도 주 정부로서는 소매업자에게 소비세를 징수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일명 'Quill 판결'로 각 주는 관내에 물리적인 거점이 있는 전자상거래 업체에만 소비세를 부과했기에 많은 수의 업체가 소비세를 징수하지 않은 일부 주에 온라인 판매 거점을 두고 세금을 피해 왔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Quill 판결이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 대법원 내에서도 이러한 목소리가 커져 2015년에는 Quill 판결 법리의 폐지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물리적인 존재가 아닌 일정한 경제적 연계를 요건으로 소매업자들에게 소비세 징수를 의무 지운다"는 내용을 둔 사우스다코타 주법의 적법성을 심사하면서 시작됐다. 사우스다코타주는 Quill 판결에 반(反)하여 전자상거래 업체가 소비자에게 소비세를 징수할 것을 요구하는 주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미국 대법원은 사우스다코타 주법의 적법성을 판단하면서 Quill 판결에서의 법리를 재검토했으며, 결국 지난 6월 21일 "사우스다코타 주법이 주간 무역을 불합리하게 제한하지 않으며 연방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이와 다른 전제의 Quill 판결 법리는 더는 유지될 수 없고, 배척돼야 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즉, "물리적 거점이 없더라도 해당 주와 상당한 연계(Substantial nexus)가 있는 활동에 대해서는 주의 과세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비록 미국 주 정부의 소비세 과세를 다루고 있으나, 비단 미국 각 주의 입법 활동뿐 아니라 향후 국제조세의 핵심개념인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 '상당한 연계(Substantial nexus)' 개념의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U의 경우에도 2015년 'EU의 디지털 단일시장을 위한 전략'을 발표하고 그 일환으로 부가가치세에 대한 실행과제를 수립했으며, 종전의 '고정사업장' 개념을 '상당한 디지털적 존재(Significant digital presence)라는 연계(Nexus)'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렇듯 국제조세에서 화두가 되는 '디지털 경제화에 따른 전자상거래 과세문제'는 국내의 과세논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제적인 과세 동향과 국내외 입법 논의를 선제적으로 분석하고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법무법인 율촌 이경근 세무사 / 이자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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