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입만 열면 아들 자랑에 침이 마르던 지인 A씨. 최근에 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점심때에 사무실로 찾아왔다. 3년 전 그의 아들은 미국의 메이저리그 대학 MBA 과정을 마치고 하늘의 별 따기인 월가 IB 은행 본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1년 뒤 정식 사원이 됐다. 하지만, 하늘을 찌르던 기쁨도 잠시, 입사 2년도 안 돼 부모와 상의도 없이 미국계 의료 설비 제작업체로 옮겼다고 한다.

아들의 IB 입사가 결정된 날, 지인들에게 비싼 밥을 사며 자랑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턴자리 잡는 게 예전 고시합격보다 어렵다고 하더라. 하루에 16시간, 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는데, 연봉 10만 달러, 공짜 밥은 없더군, 시간이 없어 장가는 언제 가는지 걱정이다". 팔불출 같은 자식자랑에 취한 아버지의 뻐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러던 그의 자부심이었지만 아들이 듣도 보도 못한 제조업체로 향하는 바람에 큰 실망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 진로를 제조업체로 바꾼 이유는 나름 일리가 있었다.

월가의 금융기관이 젊은이에게 이제는 꿈을 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정치 사회적으로 금융기관이 사회적 탐욕 집단으로 낙인 찍히고, 수수료 인하, 사회적 책임 부과 등으로 금융기관의 영업이 당분간은 옛 영화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특히 소수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주는 경쟁풍토가 보수의 평준화로 바뀐 것이 뛰어난 젊은이에게 더는 매력을 못 주지 못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산업 자본주의'가 심화하면 '금융 자본주의'로 발전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퇴락이었다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다. 시장에서 개인의 탐욕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작동한다고 칭송받았지만, 이제 금융인의 탐욕은 자본주의 자체를 망가뜨린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A씨 아들은 IB에 같이 입사한 10여 명 중 7명이 제조업체로 발길을 돌렸다고 전했다고 한다.

빈익빈 부익부로 극단화되는 금융 자본주의가 인류의 복지와 행복에 어떤 이바지를 할 것인지에 회의가 생기고, 금융이 실물 경제의 보조 수단에 그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한다면 금융 막차를 '끝물'에 잘못 탔다고 판단한 젊은이들의 엑서더스 행렬은 이어질 것이다.

상위 1%의 탐욕을 비판했던 반(反) 월가 시위가 1주년을 맞았다. 올해도 시위대가 "너희(은행)는 구제받았지만 우리는 파산했다. 이제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 때"라는 구호를 외치며 뉴욕 맨해튼에서 거리행진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전 세계 30개 도시에서 릴레이 시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소식은 국내 금융 종사자들도 착잡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여의도도 미국 금융 자본주의의 패션과 문화에 영향을 받는 곳이다. 여기도 금융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 제 구실을 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할까. 한국은 똑똑한 젊은이들이 금융에서 '대탈출' 할 일이 당장은 없겠지만, 예전처럼 금융업에 대한 열망이 식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에 빠져본다.

(취재본부장)

tscho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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