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미국의 건강보조식품 전문업체인 허벌라이프 주가는 지난 5월1일 20%나 폭락했다.

특별한 악재가 아니라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데이비드 아인혼(43) 그린라이트캐피털 회장이 콘펀러스콜에 등장한 게 주가 폭락의 빌미를 제공했다.

아인혼이 "회사에 몇 가지 질문이 있다"며 말의 서두를 열고 "매우 감사하다"로 질문을 마치는 사이 허벌라이프의 주가는 8.8% 급락했고, 이후 하락폭은 더 가팔라졌다.

이날 허벌라이프의 시가총액은 16억달러(약 1조7천억원)가 증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아인혼이 미국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로 허벌라이프의 주가 폭락을 소개했다.

아인혼은 당시 허벌라이프의 주식에 어떤 베팅을 했는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그가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 하나에 투자자들은 주식을 내다 팔았다.

허벌라이프의 주가는 콘퍼런스콜이 열린 뒤로 8.7% 더 떨어졌다.

아인혼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넉 달 전인 2008년 5월 리먼의 회계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전략은 리먼이 피산하면서 그대로 들어맞아 그는 단번에 헤지펀드 업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WSJ는 리먼의 파산 이후 아인혼의 영향력은 급속히 커져 전설적인 투자자로 통하는 워런 버핏, 칼 아이칸과 아인혼을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WSJ는 아이혼이 TV 인터뷰, 투자자 콘퍼런스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 언급한 22개 주식의 등락률을 점검해 아인혼의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를 이날 보도했다.

저널에 따르면 아인혼이 부정적 평가를 한 것으로 투자자들이 판단한 9개 주식에서는 아인혼의 발언 당일 주가 하락폭의 중간값이 4.9%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13일 후에는 13%로 확대됐다.

아인혼이 긍정적 평가를 했다고 투자자들이 본 13개 주식에서는 아인혼의 발언 당일 주가 상승폭의 중간값이 0.8%로 나타났고, 30일 후 이 수치는 10%로 높아졌다.

그의 발언만이 주가에 영향을 줬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으나 그의 '말'이 갖는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게 하는 수준이다.

저널은 지난 5월 애플 주가는 시가총액이 1조달러 이상으로 불어날 것이라는 아인혼의 예측에 1% 상승한 적이 있으며, 식품업체 다이아몬드 푸즈는 지난 1월 더는 매도 포지션을 취하지 않는다는 그린라이트캐피털의 언급이 나오자 5.9% 급등했다고 전했다.

퍼시픽 얼터너티브 애셋매니지먼트의 스콧 워너 매니저는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아인혼드(Einhorned, 아인혼의 영향력이 주가를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 됐다고 부른다"고 귀띔했다.

저널은 아인혼이 이례적으로 자기주장을 열렬히 펼치는 펀드 매니저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커피제조업체 그린마운틴과 부동산개발업체 세인트조를 각각 110장과 139장의 슬라이드를 동원해 비판함으로써, 두 기업의 주가 폭락을 가져오기도 했다.

단 한 명의 펀드 매니저가 이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대해 업계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D.A.데이비슨앤컴퍼니의 팀 램니 연구원은 "현재 주식시장의 뿌리가 얼마나 얕은가를 보여주는 징표"라고 꼬집었다.

아인혼이 운영하는 그린라이트캐피털은 운용자산이 약 80억달러다.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1995년 설립된 이래 회사는 연평균 20%의 기록적인 수익률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아인혼의 주력 펀드는 지난해 2.4%의 수익률을 기록해 과거 성적을 크게 밑돌았으나,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말까지 11%의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의 상승률 7.1%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기업 사냥꾼으로 이름 높은 아이칸은 "아이혼의 투자 전략에 대해 언급할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깊이 있는 조사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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