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일본은 요즘 곤혹스럽다. 경제ㆍ외교적으로 준전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중국과는 영토 분쟁을 겪고 미국과는 환율 전쟁을 치르고 있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은 외교만으로 끝나는 전쟁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준다. 미국과 환율전쟁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의 수출에 직격탄을 날리는 메가톤급 악재다.

최근 나온 일본의 각종 경제지표엔 미국과 치르는 환율전쟁, 중국과 치르는 영토분쟁이 모두 반영됐다. 산업생산은 고꾸라지고 대기업들의 경제전망(단칸.短觀)은 악화했다. 일본의 8월 산업생산은 작년 같은 달보다 4.3% 하락했다. 중국과 영토갈등 때문에 중국으로 수출길이 막히고 있다는 증거다.

환율(달러-엔)은 '슈퍼엔고'로 불리는 70엔대에 고착화됐다. 70엔은 일본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이다. 작년 7월 70엔대에 진입한 달러-엔은 올해 2~4월 3개월간 80엔 위로 잠깐 오른 것을 빼고는 줄곧 70엔대에 머물렀다.

일본 수출을 지탱하는 환율이 이 지경이 된 건 미국과 유럽의 양적 완화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이 1~2차 양적 완화에 이어 3차 양적 완화까지 감행해 달러가치를 뚝 떨어뜨렸다. 유럽중앙은행도 이에 질세라 국채매입을 결정했다. 미국과 유럽의 국채매입엔 공통점이 있다. 수량과 기한을 정하지 않은 무기한 매입이라는 점이다. 그에 비해 일본의 정책은 보잘 것 없이 미미하다. 양적 완화 규모를 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10조엔 늘리기로 했으나 정책의 파워면에서 미국ㆍ유럽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달러-엔 월봉 차트. □안이 작년 7월부터 현재까지 환율이다. 녹색선은 80엔을 의미한다. 달러-엔은 올해 2~4월 3개월간을 제외하곤 전부 80엔 아래 머물러 있다.>



중국과 일본은 감정의 앙금이 깊게 팼다. 중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불길 번지듯 확산하고 있다. 자동차와 가전제품은 물론 의료, 건설장비 등에서도 '일제(made in Japan) 딱지'가 붙은 제품은 팔리지 않는다. 도요타와 닛산은 중국 공장가동을 잠정 중단했고 파나소닉은 중국 시위대의 습격을 받아 생산라인이 불타 버렸다.

미국과 환율전쟁, 중국과 영토갈등… 일본은 작년 동일본 대지진 사태에 버금가는 대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은 다급하게 대책을 찾고 있다. 최근 일본 정치권에서는 엔화를 찍어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형태의 외환시장 개입이 거론되고 있다. 엔화를 찍어내 일본 국채를 매입하면 대내적 효과만 있을 뿐 정책상의 한계가 있으므로 美국채를 매입해서 엔화 환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게 하자는 의도다. 이는 미국과의 환율전쟁에 맞대응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처럼 대포를 쏴야 한다는 일본의 절실함도 묻어 있다.

집권 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자민당도 이 방안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올해 내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어느 당이 이기든 일본은행(BOJ)의 미국 국채 매입 방안은 경제정책 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게 일본 경제를 회생시킬 묘약이라고 정치권에서는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을 집행하는 재무성과 BOJ는 곤혹스럽다. 이 사안은 미국과 외교갈등으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BOJ가 미국 국채를 매입한다면 미국으로부터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미국은 통상 10월 중순에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美국채를 매입해 환율을 건드린다는 것은 외교적인 자살행위다. 재무상과 BOJ 총재가 미국 국채 매입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정치인들이 총선용으로 쓰기에 좋은 인기정책 카드지만 실행 가능성과 실익은 거의 없는 카드다. 거꾸로 예를 들면 간단하다. 미국이 자기 나라 환율을 낮추려고 일본 국채를 매입한다면 일본의 기분은 어떨까. 일본은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까. 방법이 과연 있을까.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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