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지난 2월 두산인프라코어 재무 실무자들이 산업은행을 찾았다.

해외에서 영구채권(Perpetual Bond)을 발행해 달러를 조달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당장 올해 말까지 1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던 터라 연초부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실행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됐다.

2007년 미국의 건설장비업체인 밥캣을 인수하면서 국내 재무적투자자(FI)들로부터 8억달러의 자금을 출자받고 전환우선주를 발행해 줬는데 올해 말에 만기가 돌아와 이를 상환할 달러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FI들이 모두 풋옵션(매입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연복리 9%의 이자까지 더해 12억달러 가량을 물어줘야 할 판이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고심끝에 고안해 낸 게 바로 영구채권이었다. 제안을 받은 산은은 고민에 빠졌다. 국내 기업 중 영구채권을 발행한 사례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고, 발행과 관련한 자문도 수없이 해 왔지만 산은에게 영구채권 발행은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두산그룹을 담당하는 산은 기업금융2부와 채권발행 자문을 담당하는 발행시장실 실무자들은 여러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한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협의를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인 씨티와 JP모간도 주간사로 합류시켰다.

이때부터 딜 구조를 짜기 위한 길고긴 회의가 거듭됐다. 영구채권은 형태는 채권이지만 속성은 자본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다 만기도 없고, 원금과 이자지급에 대한 의무도 없는 등 '도깨비' 같은 상품이어서 투자자에게 적합한 구조를 짜기가 쉽지 않았다.

발행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산은 기업금융2부의 배창환 부부장은 8일 "새로운 상품이다 보니 수많은 검토와 확인을 거쳐야 했다"면서 "발행사와 자문사, 로펌, 회계법인 등 모든 이해당사자가 수시로 새벽까지 콘퍼런스콜을 하면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산은과 씨티ㆍJP모간은 발행을 총괄하는 주간사였고 세계적인 로펌인 심슨 대처 앤 바틀렛, 앨런 앤 오버리, 링클레이터스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과 세종이 법률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자문에 나섰다.

국내 1위의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은 회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자문사로 참여했다.

산은은 당초 7월 중순께 모든 발행절차를 완료한다는 목표로 쉼없이 달렸다. 발행 구조도 거의 완벽하게 만들었다.

투자자에게 안정적인 채권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세계에서 단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은행들의 신용공여 제공도 구조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영구채권을 과연 자본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금융당국이 의문을 갖고 검토를 하기 시작하면서 일정이 다소 지체되기 시작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내용이나 실질을 중요시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에서는 발행사의 재량권을 인정해 원금을 상환해 줄 의무가 없고,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채권의 경우 자본으로 인정해 준다는 논리로 꾸준히 설득했다.

결국 금융당국도 장고끝에 영구채권을 자본으로 인정한다는 결론을 냈다.

법률적, 회계적 이슈는 모두 정리됐다. 관건은 해외 투자자들에 '이 상품'을 어떻게 팔아야 할 지로 고민이 모였다.

산은은 발행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공동주간사인 씨티, JP모간과 함께 지난 달 19일부터 22일까지 홍콩과 싱가포르, 영국의 투자자들을 만나 상품을 설명하기 위한 로드쇼를 떠났다.

투자 수요를 파악하고 시장 상황을 알아 보기 위해 나가는 논(Non) 딜-로드쇼는 아니었다. 잠정적으로 채권의 가격을 태핑하고 투자자 수요를 확정짓기 위한 사전적 차원의 딜로드쇼였다.

로드쇼에 참가했던 산은 기업금융2부의 엄주동 팀장은 "짧은 기간에 아시아와 유럽의 35개 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어떻게 홍보할 까 걱정이 컸다"며 "하지만 투자자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엄 팀장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딜 구조를 만들어 제시한 결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컸다"면서 "우리를 보는 세계의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로드쇼를 마친 직후인 지난 달 25일 금리 결정과 투자수요 확정을 위한 프라이싱과 북빌딩에 착수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벤치마크가 없어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금리 수준을 판단하기 어려워 가이던스 제시 시기를 최대한 늦추다 미국 5년물 국채수익률(T5)에 300bp를 가산한 수준으로 가이던스를 제시했더니 무려 14억달러의 청약이 들어왔다.

자신감이 붙자 금리를 T5+285bp로 내렸고, 투자 수요가 몰리자 결국 T5+265bp에서 금리를 확정했다. 목표치 보다 17bp 낮은 결과였다. 총 청약금액은 발행예정액의 7배인 35억달러였다.

산은 발행시장실 임용한 국제IB팀장은 "사례가 없는 구조화 딜에 대한 투자자의 금리 디스카운트 등 때문에 투자자 모집 직전까지 우려가 많았었다"고 전했다.

임 팀장은 "비교적 좋은 조건에 발행이 확정되자 7개월간의 산고 끝에 옥동자가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면서 "한국 금융산업이 한단계 레벨업 됐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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