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환 삼성증권 IPO 이사>

(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자리 이동이 많았지만, 그 속에서 기업과 산업의 부침도 많이 보면서 IB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배성환 삼성증권 이사는 자신의 IB 업계에서의 이력을 이렇게 정리했다.

지난 1991년 12월 한신증권(지금의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한 그는 짧은 지점 경험을 마치고 주식인수부(지금의 IB팀)에 배속되자마자 '일 폭탄'을 만났다.

배 이사는 "당시에는 공모가에 대한 사후 평가를 통해 주관사를 제재하는 제도가 있었다"며 "당시 업계 상위 증권사들이 대부분 제재 중이라 일시적으로 IPO 물량이 한신증권으로 더 몰렸다"고 말했다.

덕분에 배 이사는 낮은 연차에도 수많은 기업의 IPO 실사 업무를 직접 챙기게 됐다.

그는 "당시에는 일이 너무 많아 정말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본의 아니게 단기간에 수많은 IPO 경험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배 이사는 1996년, 아는 지인의 추천으로 신세계종합금융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1년 동안 종금사 전환업무 등을 맡았고, 그 후 1년은 신세계그룹 기조실에 파견돼 그룹의 금융계열사를 관리했다.

그는 "이 때 직접 경영기획 업무를 맡아본 것이 대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7년 들어 갑자기 IMF가 터지면서 수많은 종금사가 대거 영업정지됐고, 배 이사가 있던 신세계종금도 그 파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탓에 배 이사는 다시 한번 직장을 옮겨야 했고, 결국 한신증권 인수부 시절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작은 부띠끄를 차렸다.

배 이사는 "당시 일시적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에 정부의 지원금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며 "IMF 시절이라 전체적으로 일은 힘들었지만 다양한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기회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배 이사는 1999년 7월, 아는 선배의 추천으로 삼성증권 기업금융팀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좀 더 안정적으로 한 자리에서 IPO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그 결과 배 이사는 당시까지 우리 증시 역사상 공모규모가 가장 컸던 담배인삼공사의 IPO를 직접 주관했다. 또, 그는 주성엔지니어링을 주관하면서 액면가 500원인 기업의 주가가 공모 과정에서 3만6천원으로 급등하는 것도 경험했다. 당시까지 최고의 흥행 기록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삼성증권 경험을 쌓은 그는 지난해 말 IPO 팀장에 부임했다.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재무통인 김석 사장이 삼성증권으로 오면서 'IPO 업무 강화'를 강조했고, 그 적임자로 배 이사가 뽑힌 것이다.

이후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IPO 업황이 급격히 악화된 와중에도 삼성증권은 올해 들어서만 10여 개가 넘는 주관사 계약을 체결했고, 그중에는 당초 올해 최고의 대형딜로 기대를 모았던 산은지주를 비롯해 리딩투자증권 등이 있었다.

다만,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상장 일정에 다소 차질이 생겨 아직 마무리된 업무가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배 이사는 "올해 눈에 보이는 주관실적을 많이 올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워낙 업황이 좋지 않았고 개별 건수마다 외부 악재가 있었다"며 "하지만 IPO 업무라는 것이 원래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인 만큼 올해는 내년 이후의 먹거리를 많이 마련했다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주관사 선정작업이 시작된 SK루브리컨츠 등 대형딜의 주관사 자리를 좀 더 따내서 내년에는 인포맥스 리그테이블 순위에서도 확실히 도약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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