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거주자 외화예금이 사상 최대치로 늘며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화예금이 증가한 표면적 이유는 기업의 수출대금과 국외증권 발행자금 예치다.

전문가들은 외화예금 증가의 숨은 이유로 기업들의 환헤지 기피를 꼽았다. 기업들이 달러-원 환율 정체에 따라 환헤지를 하지 않고 은행 계정에 외화를 쌓아두면서 외화예금이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분기 기업의 선물환 매도 규모는 사상 최저 규모로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9월 말 외국환은행의 거주자 외화예금이 전월말보다 34억3천만달러 증가한 392억6천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17일 밝혔다.

한은은 기업의 수출대금 예치가 크게 늘고 국외증권 발행자금 예치도 증가하며 외화예금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외화 계정에 쌓아둔 것은 환헤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3분기 중 국내 수출기업의 선물환 매도는 122억달러를 나타냈다. 이는 한은이 선물환 거래 규모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최저치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지난 7월부터 환율이 1,100원대 초중반에서 횡보하는 등 안정세를 보이자 기업들이 수출대금 환헤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며 "환헤지를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현물환시장에서 원화로 환전하면서 버티다가 유로존 재정위기가 다시 심화해 환율이 튀어 오르면 대규모로 바꾸면 된다는 믿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 수출기업인 기아자동차만 해도 지난 5월부터 환헤지를 거의 하지 않았다"며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 거래가 많은 은행의 외화예금이 많이 늘었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으로 분류한 기업들과 거래가 많은 은행일수록 9월 말 외화예금 규모가 전월말보다 크게 늘었다.

34개 대기업그룹 중 2곳의 주채권은행인 국민은행은 9월 말 외화예금이 45억9천600만달러로 전월말보다 7천800만달러(1.7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외환은행 역시 대기업그룹 2곳의 주채권은행으로 9월 말 외화예금이 112억5천800만달러로 전월보다 8억1천500만달러(7.23%) 감소했다.

대기업그룹 4곳의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은 51억8천400만달러에서 54억3천900만달러로 2억5천500만달러(4.91%) 늘었고, 마찬가지로 4곳을 맡은 하나은행은 30억달러 안팎으로 전월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반면 대기업그룹 13곳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의 외화예금은 54억4천500만달러에서 62억3천100만달러로 7억8천600만달러(14.43%)나 늘었다.

일각에서 예상하는 것과 달리 정부의 외화예금 확충방안은 외화예금 증가세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9월 말 거주자 외화예금 증가에 한몫한 기업의 국외증권 발행자금 예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풀이됐다.

또 연일 연저점을 기록하는 환율이 추가 하락할 경우 기업들이 뒤늦게 달러 매도-원화 매수에 나서며 외화예금이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도 전망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세 경감은 일러야 내년 초 일이라 아직 은행들이 은행세 경감을 목표로 외화예금을 늘리려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며 "기업의 국외증권 발행자금은 외화계정에 잠시 머무를 뿐 용처에 따라 빠져나갈 것이다"고 설명했다.

IB 관계자는 "1,120원대에서라도 달러를 팔았어야 했는데 기업들이 방심하다가 매도 타이밍을 놓쳤다"며 "1,100원선이 깨지면 달러 추격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외화예금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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