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증권사들이 다시 급증하고 있는 미매각 회사채에 대한 부담으로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지난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되레 시장금리가 오르고 신용스프레드가 확대 추세로 돌아서 처리에 곤란을 겪고 있는 탓이다.

7월 기준금리 인하 이후 급격히 줄었던 회사채 수요예측 미매각률은 9월 이후 재차 상승세로 돌아섰고 증권사들이 떠안는 미매각 물량도 다시 늘고 있다.

장기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예상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기준금리 추가 인하 기대가 퇴색하면서 신용스프레드의 확대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다시 쌓여가는 미매각 회사채 = 22일 금융감독원과 한화투자증권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실시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물량은 발행 예정액의 87%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4조6천억원을 넘었다.

회사채 발행시장 제도 개선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증권사간 주관사 따내기 경쟁으로 수요예측 희망금리가 지나치게 낮아지면서 기관들이 '보이콧'에 나선 탓이었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막대한 규모의 미매각 물량을 떠안게 됐고 시장금리가 반등세로 돌아설 경우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금통위가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증권사들은 기사회생했다. 4조원이 넘는 미매각 회사채를 처리하는데 채 2주도 안걸렸다.

이후 발행시장 여건히 대폭 개선되면서 수요예측 미매각률은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7월에는 전달에 비해 절반 수준인 40%로 줄었고, 8월에는 18%대까지 낮아졌다. 9월에는 36%로 재차 높아지기는 했지만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달 말 웅진그룹 계열의 건설사인 극동건설이 부도를 내고 웅진홀딩스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신용리스크가 다시 부각됐고 기관들의 수요예측 참여가 극도로 위축돼 미매각률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달 들어 지난 10일까지 집계한 수요예측 미매각률은 49% 수준이다. 10일 이후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미매각 물량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어 미매각률은 50%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요예측에서 발행 예정액의 절반 이상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고스란히 증권사가 돈을 들여 인수하고 있다.



◇수요위축ㆍ금리반등…정리할 재간이 없다 = 한 대형 증권사는 신용등급 'AA-'인 기업이 내달 초 발행할 예정인 회사채를 200억원 어치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우량한 기업의 물량임에도 기관 수요가 없어 올해안에 매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증권사들이 떠안는 미매각 회사채 규모가 다시 급증하고 있지만 제때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웅진사태'로 기관들이 크레디트물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는 와중에 기준금리 인하 이후 시장금리가 오르고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되면서 기관들의 수요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미매각 회사채 처리를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회사채 주관과 인수에 공격적으로 나섰던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인수북이 다 찼을 정도로 많은 미매각 회사채를 보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증권사의 DCM부서장은 "'A'급 회사채는 사실상 소화 자체가 안될 정도다. 신용도가 비교적 좋은 기업의 회사채 조차 팔리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부서장은 "금리가 내리면 정리가 쉬울텐데 7월과는 시장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면서 "일부 증권사는 손실을 감수하고 손절 물량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고 전했다.

다른 증권사의 채권인수 담당자는 "스프레드를 붙여 물량을 내놓더라도 잘 팔리지 않는다"며 "결과적으로 호가만 올려 놓게 돼 인수단으로 참여했던 다른 증권사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가급적 미매각 물량을 떠안지 않기 위해 발행사에 목소리를 높이는 풍경도 연출하고 있다.

발행사들은 그간 수요예측에서 대규모 미달이 나더라도 희망금리밴드 상단에서 발행금리를 결정하곤 했다. 결국 증권사들이 금리 리스크를 모두 떠안고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미매각 회사채를 받아왔다.

최근들어 발행금리 결정 협의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금리를 높이자고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미매각 회사채를 떠안으면서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여전하다. 시장금리 반등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신용스프레드가 급격하게 확대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관들의 수요가 크게 위축된 상태여서 증권사들이 미매각 회사채를 정리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시장금리 반등 폭이 예상보다 커진다면 회사채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증권사들은 상당한 손실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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