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웅진그룹 계열사 부도와 LIG건설의 기업어음(CP) 사태가 자본시장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다각적이다.

투자가들이 더는 A등급 이하의 회사가 발행한 회사채나 CP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우량·비우량기업의 자금조달 양극화가 심해지고 신용 스프레드는 더 벌어질 것이다. 이는 이미 회사채 수요조사에 참가한 증권사들의 회사채 미매각 보유부담 재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의 부동화가 심화하고 비우량 기업의 자금조달은 격심한 애로에 직면한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는' 형국이 된다. 기업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회사채나 CP 투자자 보호방안도 강구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투자자들이 위험을 알아서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우량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수익률이 더욱 낮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회사채 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을 둘러싼 큰 환경의 변화는 한국의 경제 성장에 대한 우울한 전망 때문이다. IMF가 내놓은 세계전망 보고서는 한국이 2013년에는 2.5% 성장으로 축 처지고, 2016년부터 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진입하면서 성장률이 내리막길을 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요 원인은 경제성장 동력이었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경제활동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당장 2016년에는 고졸 학생의 숫자가 대학 정원보다 적은 상황이 도래한다. 베이버부머의 맏형인 1958년생의 숫자가 80여만 명인데 반해 2011년 출생자는 고작 44만 명에 불과하다.

인구학적 구조적 변화로 부동산 시장의 수급은 이미 깨졌고, 수출ㆍ내수 부진으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마이너스 행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예전 같은 주식 대박도 꿈꾸기 어렵다.

개인들의 재테크는 점점 캄캄한 암흑 터널이다. 위기의 상시화로 과거 같은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생기더라도 금리가 큰 폭으로 되 튀어 오르지 않는다. 유동성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사상 가장 많이 풀려 있어서다. 특히 채권시장이 해외에 전면 개방된 탓에 유동성 유입은 이어져 국고채 금리의 하락 기조가 불가피하다.

이 영향으로 현재 3%대인 예금금리는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현재 월 300만 원 봉급을 받는다면 10억 원 현찰을 예금해 매월 이자를 받는 것과 같고, 내년쯤에는 20억 원의 현찰을 맡긴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것이다. 초저금리 기조의 고착화로 노후대비, 재무설계의 의미가 사실상 없어지는 국면이다.

베이비 붐 세대들은 취업도 자산운용도 경제성장기와 함께 달려 개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수혜를 누렸다. 집을 사두면 오르고 경제는 성장한다는 관념에 살아왔지만, 이제는 모두가 성장 없는 침체에 적응해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주 금융협의회에서 "저성장, 장기불황 속에서 위기의 상시화에 적응해야 하며 이것이 새 패러다임"이라고 토로했다. 하영구 씨티은행 행장도 "위기와 더불어 사는 것을 생활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저성장ㆍ초저금리 상황에서 위기가 끝나기를 바라는 희망은 버리고, 각자도생(各者圖生)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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