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단골 연구 대상이다.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워낙 극적으로 나타나는 나라여서다. OECD가 최근 한국의 인구고령화를 주제로 깊이 있는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우리 사회에 또 한 번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72세에 은퇴…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한국

OECD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발간한 '한국의 인구 고령화와 고령자 고용정책(Working Better with Age: Korea)'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은퇴연령은 남·여 모두 72세였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독보적인 1위다. OECD 남자평균 65.1세와 여자 평균 63.6세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은퇴연령은 72세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은퇴시기가 가장 빠른 프랑스의 60세에 비해 무려 12년이나 늦다>

50세에서 74세까지를 의미하는 고령자 고용률도 2016년을 기준으로 62.1%에 달해 OECD 평균 50.8%에 비해 월등히 높다. 연령별로 비교해도 한국의 고령자 고용률이 청년층의 고용률보다 더 높다.

한국의 고령자 고용률은 높지만, 일자리의 질은 매우 낮은 것으로 진단됐다. 2016년 기준으로 고령자가 같은 직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하는 비율은 23% 수준으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 5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통계치다.





<한국의 고령자 임시직 비율은 OECD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경제활동 인구의 임시직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지난해 기준으로 55세에서 64세까지 한국의 고령자 임시직 비율도 30% 수준을 넘어섰다. 15세부터 64세까지의 임시직 비율이 18% 안팎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고령자의 일자리 안정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세 수준이다. 통계를 액면대로 해석하면 한국인은 죽기 10년 전까지 '고용의 질이 낮은 일자리'에서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정 여력 있으면서도 사회안전망 구축 소홀

OECD는 인구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마땅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지 않은 탓에 한국의 고령자들이 일자리에서 은퇴하지 못하는 것으로 진단했다.

OECD는 고령자의 빈곤을 줄이기 위해 부동산 요건과 고령자영업자의 소득 기준 완화 등을 중심으로 근로장려세제(EITC:Earned Income Tax Credit)를 강화하라고 권고했다.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기초생활 급부도 현실화하고 자영업자 등에 대한 국민연금 가입 확대도 권유됐다.

마침 '사람이 먼저다'라는 기치를 내건 문재인 정부의 철학이 투영된 첫 살림살이 계획표인 2019년 예산안이 발표됐다. 예산안은 올해보다 9.7% 증액된 470조5천억원 규모다. 벌써 일부 정치권 등은 퍼주기를 위한 '초(超)슈퍼 예산'이라며 대규모 삭감을 장담하고 있다.

불요불급한 예산에 대해서는 추상같은 추궁과 삭감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하지만 OECD 권고 등을 고려하면 일자리 예산안 만큼은 여야가 전격적으로 합의했으면 좋겠다. 올해보다 22.0% 증가한 23조5천억원 수준의 일자리 예산안은 노인 등 취약계층의 생명선과 같은 의미여서다.

'퍼주기'라는 비난을 받았던 무상급식과 기초노령연금 지급 등에도 재정건전성이 나빠지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유일한 흑자국으로 분류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재정건전성을 자랑하고 있다.

거리에서 박스를 주워야 하는 70대 노인을 부양할 정도의 재정 여력은 한국에 있다는 의미다. '고령노동자'만 있고 '노인 어르신'은 없는 나라의 재정건전성이 더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취재부본부장)

n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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