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글로벌 채권시장이 크레디트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실제 위기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경기 둔화와 시장의 신규 규제 등으로 유동성 고갈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 "유동성은 건강과 같은 것…고마움을 알아가는 채권시장"

CNBC는 3일(현지시간) "회사채 전반에서 유동성이 말라가고 있다"며 "고금리 채권의 스프레드는 지난 10월 2일 322bp에서 11월 20일 422bp로 확대됐는데, 이는 어려움이 봉착할 것이란 신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동성이란 좋은 건강 상태와도 같아서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감사할 줄 모른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이제는 주식시장에 이어 크레디트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유동성의 고마움을 투자자가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채권 투자자에게 유동성이란 합리적인 기간 합리적인 가격에 채권을 내다 팔 수 있는 능력과도 같다.

지난 10여년간 일부 예외 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채권시장은 유동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여타 중앙은행이 시장에 현금을 쏟아부으며 주식과 회사채 같은 고수익 자산에 자금이 쏟아졌다.

채권시장은 이 기간에 대체로 평화로웠지만, 이런 장기적인 변동성 완화 장세는 끝나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연준을 필두로 중앙은행이 통화 긴축에 나서고 있고, 회사채 시장의 스프레드는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CNBC는 "2008년과 같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의 가능성은 작을지라도, 채권시장이 변동성 시기에 취약할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전했다.

◇ 뒤로 물러서는 '메인 플레이어'

금융위기 이후 채권시장의 큰 변화 중 하나는 은행과 중개인의 투자자나 시장 조성자의 역할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 이전에 이들은 회사채를 대규모로 보유하며 시장에서 고객 거래를 위해 호가를 내놓았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규제 개혁은 시장 체제 전반을 뒤바꾸고 있다. 연준이 설정한 엄격한 자본 준비 요건과 은행권의 프랍 트레이딩 규제 등으로 은행권 등은 회사채를 조달할 의향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 내 이들의 역할도 주연 배우에서 대리인 정도로 변했다.

현재 채권시장 기고가로 활동 중인 월가 출신의 마틴 프리드손은 "은행권의 재정 여건은 더욱 개선되고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도 줄었다"면서도 "이에 따른 의도치 않은 결과는 바로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 감소"라고 꼬집었다.

일부 채권시장 지표상으로는 금융위기 이전보다 유동성이 더욱 풍부해 보일 수도 있다. 시장의 비드와 오퍼 스프레드는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레걸앤드제네럴(Legal & General) 자산운용의 제이슨 슈프 헤드는 "호가 스프레드가 축소된 것으로 보일수 있지만, 시장 규모가 작을수록 그런 것"이라며 "올해 전반적인 유동성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 변동성이 커질 때 과거 대비 더욱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형 은행이 채권의 대규모 주문을 신속히 이행할 의사가 없다면 시장의 대형 거래의 유동성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경우 가격은 더욱 빠르게 내릴 수 있고, 이 때문에 변동성 장세에서는 매도자가 매수자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웰스파고의 조지 루즈낙 채권 헤드는 "우리는 이제 유동성을 창출하기 위해 뮤추얼 펀드와 헤지펀드에 더욱 의존하려고 한다"며 "시장 시스템은 장기간의 매도 구간에 대해 실질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기관 투자자가 시장의 거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신규 규제도 문제점으로 작용한다. 모든 채권 투자자의 가격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이지만, 시장 큰 손들에게는 대량 거래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보야 자산운용의 맷 톰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소규모 거래의 유동성은 더욱 많아지지만, 대규모 거래에서는 부족해진다"며 "중개인이 설 자리도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 美 BBB 회사채 '경고음'…"매도 패닉의 '스노우 볼' 효과"

유동성 위기는 빠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매도는 가격 하락을 야기하고 이는 추가적인 매도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CNBC는 "채권시장의 구조 변화와 규제 도입 등으로 위기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패도 패닉의 '스노우 볼' 효과는 가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고금리채권 시장에서 이런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루즈낙 헤드는 "고금리 시장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며 "기업은 더욱 많은 부채를 떠안으면서도 기초 여건은 악화하고 있다. 시장은 더욱 커지면서도 깊이는 깊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투자적격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BBB' 등급은 요주의 분야다. BBB 채권 규모는 5조8천억 달러의 투자적격등급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슈프 헤드는 "BBB 등급에 많은 우려가 있다"며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5천억에서 1조 달러 사이의 BBB 채권이 고금리시장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CNBC는 "시장 특성상 투자자가 당황하면 매수세가 사라지고 유동성은 마른다"며 "규제나 시장 구조 솔루션 등으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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