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금융권이 한동안 잠잠하던 낙하산 인사로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떠난 자리를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꿰차면서 새 정권 역시 과거 정권 코드인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연수원은 정희수 신임 원장의 취임식을 잠정 연기했다. 정 신임 원장은 국회의원 출신으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대상인데, 이를 거치지 않고 취임하려던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17~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을 지내다 지난 대선 때 돌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캠프로 옮겨 통합정부자문위원단 부단장을 맡았다.

보험사 관계자는 "별도의 추천위원회 없이 바로 이사회를 구성해 결정하다 보니 자격 요건을 확인도 안 한 것"이라며 "직원 40명 규모의 작은 기관에 보험 경력이 전혀 없는 국회의원이 온다는 건 캠프 출신 정치인에 대한 보은 낙하산 인사로 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역대 보험연수원장은 대부분 금융감독원 출신이 맡아왔다. 그러다 세월호 사고 이후 강화된 공직자윤리법, 일명 관피아 방지법으로 금감원 퇴직자의 재취업이 어려워지자 정치권 낙하산이 시작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보험연수원은 취업심사 승인이 나면 취임식 일정을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화재보험협회도 최근 차기 이사장 후보 3명을 대상으로 면접을 했지만 전원 탈락하고 재공모를 진행하기로 했다.

화보협회는 지난 10년간 민간 보험사 출신이 이사장을 맡아왔으며, 이번에도 보험업계 출신 후보들만 면접을 봐 자리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됐으나 돌연 재공모가 결정되면서 정부가 인선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보험연수원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정치권 인물이 이미 내정됐으며, 재공모 일정을 빠르게 추진해 이달 중 선임을 끝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오는 27일 임기가 끝나는 저축은행중앙회장 자리에도 결국 낙하산 인사가 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의 주요 대표들이 모인 회장후보추위원회에서 회장 후보 추천을 받고 투표하는 절차는 진행하겠지만, 과거 선례를 비춰볼 때 개인이 오너인 곳, 은행계열, 일본계, 일반기업 등 소유구조가 제각각인 저축은행 특성상 의견이 모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결국 정부에서 시그널을 줘야 회추위를 가동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입김이 있을 것"이라며 "기재부 출신이나 정치권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미 올해 들어 문재인 캠프 인사 등 금융권 낙하산 시도가 계속되면서 인사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2월 황록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임기 절반을 남기고 돌연 사임하고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이 앉았다. 조용순 수출입은행 감사는 노무현 정부 대통령경호처 경호본부장 출신이며 KB금융은 지난해 말 기존에 없던 부회장 자리까지 신설하며 문재인 캠프 출신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을 선임했다. 지난해 9월 낙하산 논란 끝에 선임된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도 문재인 캠프에 참여한 바 있다.

특히 내년 4월 한기정 보험연구원장, 6월 김덕수 여신금융협회장, 11월 성대규 보험개발원장 등 유관 금융기관장 임기가 줄줄이 만료됨에 따라 낙하산 인사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정권 때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던 자리보다 시장의 집중도는 떨어지면서 연봉 수준이 낮지 않고 활동하기 좋은 자리를 찾는 경향이 있다"면서 "전혀 해당 업권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인물이 수장을 맡는 등 지난 정권과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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